과학연구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정규적혁명무력의 기관지 《조선인민군》의 창간과 그 발전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

 2020.2.11.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자기 발전의 전 로정을 가장 빛나는 승리와 영광으로 수놓아온 조선인민군의 70여년력사에는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정규적인 혁명무력건설로선을 받드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불멸의 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어머님은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를 받들어나가는 길에서는 한치의 드팀도 없으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3권 292페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받드시고 정규적혁명무력의 기관지인 《조선인민군》의 창간과 그 발전을 위한 사업에도 깊은 로고를 바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엇보다먼저 《조선인민군》창간호 발간사업이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대로 진행되도록 정력적으로 지도해주시였다.

해방후 반당종파분자들과 사대주의, 교조주의자들은 군대신문이 무엇때문에 필요한가, 다른 나라 군대신문을 조선문판으로 번역출판하여 보게 하든가 아니면 그대로 보게 하자고 얼빠진 궤변을 줴쳤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자들의 궤변을 단호히 짓부시고 우리의 인민군대는 당당한 독립국가의 군대로서 마땅히 자기의 신문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통하여 군인들을 교양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군대의 신문은 조국보위초소에 서있는 군인들에게 복무하는 출판물로서 군인들을 당의 사상과 로선으로 무장시키고 그 관철에로 불러일으키는 선전선동자적, 조직자적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군보건설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고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된 혁명적출판물의 전통을 옳바로 계승하여야 한다고 인민군신문의 사명과 편집방향과 방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드시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신문사일군들이 인민군신문의 성격과 사명에 대한 똑똑한 관점을 가지고 편집의 기본방향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주체37(1948)년 7월 4일 신문사에 나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민군신문은 김일성장군님의 신문이며 장군님의 령도밑에 장군님의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신문이라고 하시면서 인민군신문은 장군님께서 주신 건군과업을 해설하고 그 관철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기 위한 기사들을 기본으로 편집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며칠후인 7월 7일에 또다시 신문사에 나가시여 창간호 편집안을 보아주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대로 훌륭히 완성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날 신문사일군들을 모이게 하시고 편집방안이 한눈에 다 볼수 있도록 흑판에 그려놓게 하신 다음 그들에게 신문창간호는 조금도 나무랄데가 없이 완전무결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매면별로 편집내용에 대한 의견을 하나하나 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면 한복판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진을 정중히 모시도록 하시고 신문제호아래에는 장군님께서 인민군열병식에서 하신 연설가운데서 인민군대의 기본과업을 밝혀주신 명제를 모시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계획한대로 사설 김일성장군님의 교시를 잘 받들어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자》를 실으면 1면의 성격을 뚜렷이 살릴수 있다고 가르쳐주시고 2면과 3면, 4면의 내용편집에 대한 의견도 구체적으로 주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이러한 세심한 관심속에 창간호 편집안은 훌륭히 완성되게 되였고 드디여 주체37(1948)년 7월 10일 《조선인민군》이 창간되여 위대한 수령님께 커다란 기쁨과 만족을 드리게 되였다.

실로 《조선인민군》의 창간은 혁명무력건설에서 인민무력의 정치군사적위력을 강화할수 있는 무기가 마련된 또 하나의 획기적사변으로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음으로 군보가 창간된 후에도 우리 인민군신문이 당의 군대의 신문으로서 자기의 사명을 훌륭히 수행해나가도록 계속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민군신문이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사진촬영과 편집에서 다른 신문의 본보기가 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주체37(1948)년 8월 27일 신문사에 나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날 신문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 찬성투표하시는 장군님의 영상을 정중히 모시지 못한 문제에 대하여 지적하시며 장군님의 사진을 잘 찍을뿐아니라 선명하고 정중하게 모셔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주체38(1949)년 3월 9일에는 《조선인민군》의 책임주필을 만나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대외활동과 관련한 보도는 특보중의 특보인것만큼 누구나 첫눈에 알아볼수 있도록 신문의 1면에서도 상단의 제일 좋은 자리에 정중히 편집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민군신문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혁명전통에 대한 기사를 많이 실어 인민군군인들을 교양하도록 하시였다.

주체37(1948)년 10월 3일 신문사의 책임주필을 만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의 령도밑에 우리 항일유격대는 싸움도 많이 하고 공로도 크게 세웠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남긴것이 별로 없는 조건에서 취재활동을 활발히 벌리는것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쳐주시고 얼마후인 10월 7일 이곳 신문사일군들을 다시 만나시여 혁명전통을 집중편집하기 위한 방도를 의논해주시였다.

해당 일군으로부터 항일무장투쟁참가자들의 전투실화에 《조선빨찌산의 투쟁실화》 또는 《조선빨찌산들의 투쟁이야기》라는 고정표제를 달자는 제의를 받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물론 그렇게 하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러나 동무들도 잘 알고있는바와 같이 우리 인민은 유구한 우리 민족력사에서 처음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칭송받아오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여 우리 민족이 재생될수 있었고 그이의 존함속에서만 우리 조국과 인민의 륭성번영이 약속되여있다는것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다고, 그러므로 나는 우리 군인들의 마음속에 친근하게 자리잡은 장군님의 존함을 모시여 고정표제를 김일성장군 항일유격전실화》라고 달았으면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38(1949)년 5월 30일에 또다시 이곳 신문사일군들을 만나시여 보천보전투승리 12돐기념특집을 특별히 잘 편집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께서 조직지휘하신 보천보전투의 승리는 일제침략자들에게 조선민족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우리 인민들에게 일제와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는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고 하시며 6월 4일 신문에 사설을 내고 보천보전투가 어떻게 승리적으로 조직진행되였는가 하는 기사를 써내며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중에서 보천보전투장면에 대한 부분을 편집하도록 특집방향도 가르쳐주시였다.

그리하여 해방후 신문들가운데서 《조선인민군》에 처음으로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전투실화 《눈보라속의 매복전》이 실리게 되였으며 6월 4일 신문특집이 특색있게 편집되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민군신문이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무장시키며 당의 정책을 민감하게 관철해나가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상적으로 인민군신문이 군인들을 위대한 수령님의 위대성과 불멸의 혁명업적으로 무장시키고 혁명전통교양, 당정책교양, 조국보위에 대한 영예감교양, 계급교양, 애국주의교양, 군민일치교양과 군사훈련, 군사적자질을 높이는데 필요한 내용들을 잘 편집하도록 하시고 주체38(1949)년 7월 30일 신문사일군들을 만나시여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군인들을 전투준비완성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기사편집에 더욱 힘을 넣을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신문사에서 자체준비도 잘할데 대하여 말씀해주시면서 적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신문을 어떻게 만들며 전선부대들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하고 인쇄는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방도들을 찾아내여 대책할데 대하여서도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뿐만아니라 김정숙동지께서는 신문사에 나가실 때마다 기자, 편집원들의 자질을 높이고 신문사의 물질기술적토대도 더 튼튼히 다져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으며 군보의 보급체계도 바로세워 신문이 신속히 배포되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가장 충직하게 받들어나가신 김정숙동지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조선인민군》은 창간초기부터 자기의 사명과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게 되였으며 우리 혁명무력은 당의 군대로 영원히 강화발전할수 있는 위력한 사상적무기를 가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