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민족의 재부이며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우리 나라 조종의 산이며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민족사의 발상지인 백두산과 그 주변일대에서 력사유적유물들에 대한 조사와 발굴사업이 심화되는 과정에 2024년에 돌도끼 2개를 새로 발견하였다.
돌도끼 한개는 2024년 6월 7일 량강도 갑산군 사평리 1작업반의 밭(허천강기슭에서 서쪽방향으로 약 120m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였다. 이 돌도끼는 검은 재색의 휘장암으로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길이 11.5cm, 두께 3.7cm이고 등쪽의 너비 4.2cm, 몸체의 가운데부분의 너비 5.4cm, 밑부분 날의 너비는 5.6cm이다. 도끼의 가로자름면은 모죽은 장방형에 가깝고 날은 조개날이다. 도끼의 평면생김새는 날쪽이 넓고 등쪽으로 가면서 얼마간 좁아든 길죽한 제형에 가까우며 등부분과 몸체의 중간부분까지는 쫏기수법으로 가공하였고 몸체의 아래부분에는 량면을 대칭으로 정교하게 갈아서 날을 세웠다. 날에는 사용과정에 떨어져나간 미세한 쪼각흔적이 두곳에 나타나있다.
다른 한개의 돌도끼는 2024년 6월 14일 량강도 혜산시 신보리의 양묘장 3호포전에서 발견되였는데 검은색의 현무암으로 만들었다. 돌도끼의 크기는 길이 13.5㎝, 두께 3.2cm, 등쪽의 너비 4.3㎝, 몸체의 가운데부분의 너비 5.1cm, 밑부분 날의 너비 5.5㎝이며 가로자름면이 타원형이고 날은 역시 조개날이다. 도끼의 평면생김새도 역시 날쪽이 넓고 등쪽으로 가면서 약간 좁아든 길죽한 제형이며 거의 전면을 정교하게 갈았고 다만 등면에만 쫏기수법이 적용되였다. 날은 량면을 대칭으로 갈아서 세웠는데 가운데부분이 심히 무디였다.
새로 발견된 2개의 돌도끼는 재료와 크기, 가로자름면의 생김새가 다르지만 전체적인 생김새가 날쪽이 넓고 등쪽으로 가면서 좁아든 길죽한 제형의 생김새이고 량면을 대칭으로 갈아 조개날을 이루게 하였으며 갈기수법과 쫏기수법으로 만든것들이다.
최근에 량강도 갑산군 사평리와 혜산시 신보리에서 새로 발견된 돌도끼들은 평면생김새와 가로자름면의 생김새, 날의 생김새, 제작수법 등으로 보아 신석기시대에 조선옛류형사람들이 만들어 사용한 돌도끼부류에 속한다.
지금까지 백두산지구인 량강도일대에서 신석기시대의 돌도끼가 발견된 유적은 혜산시 강구동유적뿐이였다.
량강도일대에서 돌도끼는 이미 1965년에 갑산군 조양리와 1983년에 갑산군 사평리에서 발견된 실례가 있는데 이 돌도끼들은 갈색간그릇, 검정간그릇과 함께 나온것으로 하여 청동기시대의 돌도끼들로 인정되였다.
2023년 9~10월기간에 발굴된 강구동유적에서는 돌도끼, 흑요석기와 함께 전나무잎무늬그릇, 평행사선띠무늬그릇 등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의 전형적인 새김무늬질그릇쪼각들이 발견되였는데 이 유적은 6 000년전의 신석기시대후기유적으로 확증되였다.
량강도 혜산시와 갑산군에서 또다시 신석기시대의 돌도끼들이 새로 발견됨으로써 백두산가까이의 압록강상류류역과 허천강류역일대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이 살아오면서 오랜 력사와 문화를 창조하였다는것을 다시한번 새롭게 확증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