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최덕성
2024.9.30.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인민에 대한 사랑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고계시는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십니다.》
인민에 대한 사랑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지니고계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활동려정의 갈피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부모, 친척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돌려주신 친어버이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새겨져있다.
주체51(1962)년 1월 29일 황해남도 연안군 오현리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장상점에 들리시여 상점의 실태와 판매원들의 가정형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그 과정에 한 판매원의 아버지가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미국놈들에게 학살되였다는것과 그가 아직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그에게 학교에 가고싶은가고 물으시였다. 학교에 가고싶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여야 한다고 하시고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제부터 우리가 이 동무의 아버지노릇을 하자고, 이 동무를 인민경제학원(당시)에 보내주자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에게 오늘저녁에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그동안 길떠날 준비를 하라고 다정하게 이르시고나서 문득 동무네와 같은 집이 몇집이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물으심에 그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남편을 잃고 적들의 악행까지 받은 탓으로 몇해전부터 눈까지 못보게 된 이웃마을의 한 아주머니와 그 집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아주머니의 눈을 평양에서 고쳐주자고, 빨리 자동차를 타고가서 그를 데려오라고 이르시고는 상점문을 나서시였다.
그날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현리마을의 유가족들과 몸소 자리를 같이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점판매원의 어머니에게 생활형편을 물으시다가 자식들을 모두 학원에 보내려고 하는데 혼자서 살만한가고 다정히 물어주시고나서 유가족답게 마음을 든든히 먹고 혁명사업에 앞장서며 자녀들을 훌륭한 일군으로 키워내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이어 가슴아프신 안색으로 앞못보는 이웃마을 아주머니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당장 평양에 올라가서 눈을 치료하자고, 그리고 아주머니의 아들딸도 학원에 보내주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그 아주머니는 옷고름으로 눈언저리를 닦으며 《수상님,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감사의 인사말밖에는 더 올리지 못하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밤으로 아주머니의 사위가 복무하고있는 부대에 련락을 띄우시여 그가 병원으로 떠나기 전에 딸과 사위를 만나볼수 있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뜻밖에 딸과 사위를 만난 아주머니는 더 말할것도 없고 온 마을사람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끝없이 넓고 깊으신 친어버이사랑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차를 타고 앞못보는 아주머니의 아들딸과 상점판매원의 동생은 해주유자녀학원(당시)으로 가고 아주머니와 상점판매원은 평양으로 올라가 각각 적십자병원(당시)과 인민경제학원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오현리 유가족들을 위해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그들의 생활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정녕 오현리의 유가족들에게 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그들을 낳아준 부모들도 줄수 없었던 친어버이사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