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부교수 강문혁
2025.8.1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는 훌륭한 시를 써내여 민주건설에 기여하였으며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힘과 지혜를 다 바치고있는 애국적시인이고 우리 당의 우수한 당원입니다.》
조선인민에게 있어서 8월 15일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민족해방의 새 아침이 밝아온 뜻깊은 날이다.
이 날을 맞이할 때면 일제에게 신음하던 조선인민에게 재생의 서광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흠모하여 터치던 한 혁명시인의 격정의 웨침이 들려오는것만 같다.
장군이 오시는것은 아, 아무도 몰랐으나
장군이 오신것은 누구나 알았다
장군은 가리울수 없는 우리의 빛
장군은 감출수 없는 우리의 태양
…
장군은 만민의 령장, 인류의 태양
동방에서 솟은 태양 온 누리를 비치리!
송시 《김일성장군찬가》는 혁명시인 리찬선생이 1946년 4월 함흥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환영하는 연회에 참가하여 읊은 즉흥시이다.
그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흠모와 칭송의 열정은 결코 한순간에 이루어진것이 아니였다.
리찬선생은 1910년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출생하였다.
물지게장사를 하던 홀어머니의 눈물겨운 지성속에 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땅에 건너가 대학에 입학하여 고학하였으나 학비난과 일제의 박해로 1년도 못 채우고 중퇴당한 그는 《카프》의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애국적인 시작품들을 창작한것으로 하여 여러 차례 일제경찰에 체포된적도 있었다.
리찬선생은 1930년대 후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한없는 동경의 마음을 담아 서정시 《눈내리는 보성의 밤》과 《국경의 밤》을 창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아오신 조국의 해방은 불우한 식민지청년이였던 그에게 운명전환의 계기로 되였으며 그는 해방후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으로 당시 함경남도 혜산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 함남일보사 편집국장,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였다.
리찬선생이 《김일성장군찬가》와 같은 훌륭한 송시를 지어읊을수 있은것은 그의 시적정서와 감정, 그의 시상이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광적인 흠모와 칭송의 높은 령마루에 올라있었기때문이였다.
하기에 시인은 위대한 수령님께 송시를 지어드린데 이어 수령님에 대한 전체 조선인민의 다함없는 흠모와 칭송의 감정을 뜨겁게 노래한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창작할수 있었다.
생의 마지막시기에도 시인은 극도로 악화된 병을 걱정하며 입원치료도 받고 휴식할것을 권고하는 동지들에게 전사는 죽어도 고지에서 죽어야 하고 문필가는 쓰러져도 취재길에서 쓰러져야 한다고,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쓴 자기가 그 누구보다 마지막발걸음을 빛나게 찍어야 한다고 하면서 1974년 1월 위대한 수령님의 신년사를 학습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시인은 시줄을 다듬기 전에 인생을 다듬는다는 말이 있다.
축적이 없는 폭발이 있을수 없듯이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흠모로 그토록 가슴을 끓인 시인이였기에 먼 후날에도 손색없는 수령칭송의 혁명시가들을 명작으로 훌륭히 창작할수 있었던것이다.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숭고한 정신세계를 지녔던 혁명시인 리찬선생!
그는 오늘도 수령칭송의 혁명시가들과 더불어 조선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