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과 학생들에 대한 보육과 교양, 교육문제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양보할수 없는 제1의 국사입니다.》
학생들에게 교복과 학용품을 공급하는 문제, 교육사업을 발전시키는 문제는 조건이 좋으면 하고 어려우면 못해도 되는 무방한 사업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중차대한 사업이라는것이 바로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이다.
돌이켜보면 교육사업은 다사다난했던 지난 시기에도 우리 당이 한시도 미룰수 없는 중대사로 내세우고 선차적인 힘을 기울여온 문제이다.
사실 세계전쟁사에는 경제체제를 전시체제로 개편한 례는 있어도 교육사업을 전시체제로 개편한 례는 있어본적이 없다. 그만큼 준엄한 전시하에서 교육사업에 국가적인 관심을 돌리고 중단없이 밀고나간다는것은 상상할수 없는 일인것이다. 그렇지만
미제가 일으킨 전쟁으로 하여 수많은 학교가 불타버리고 교육사업에 종사하던 모든 인적, 물적자원들이 파괴된것으로 하여 일부 사람들은 전쟁시기인것만큼 교육사업이 중단되는것은 응당한 일로 여기고있었다.
그러나 전쟁 첫날부터 승리를 확신하고계신
그 중대조치들중 하나가 바로 학생들의 교과서를 수송할데 대한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교과서는 학생들의 사상의식이 형성되는 년령기에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지식을 주는 생활의 벗이며 또 인재육성을 위한 기본수단의 하나이다. 싸우는 병사에게는 탄알이 있어야 하듯이 배우는 학생에게는 교과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과 전시수송의 긴장성으로 하여 생산된 교과서들조차 학생들에게 가닿지 못하고있었다.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고 천만가지 사업을 다 맡아보시는 분망한 속에서도 주체40(1951)년 3월 어느날 교과서편찬실태를 료해하신
이것은 어느 나라 교육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일이였다.
그리하여 싸우는 나라 조선에서는 두메산골 농촌분교와 전선마을의 교실에서까지 학생들의 랑랑한 글소리가 울러퍼지게 되였으며 그것은 곧 미제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승리의 축포소리로 이어지게 되였다.
이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