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오순희
2024.9.3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교원은 후대들을 혁명의 계승자로 키우는 직업적인 혁명가입니다. 동무들은 교원의 영예를 깊이 간직하고 모든 난관과 애로를 극복하면서 혁명사업에 충실하여야 하겠습니다.》
교육사업은 혁명사업, 교육자들은 직업적인 혁명가!
이 값높은 부름의 주인공들은 이 나라 어디에나 다 있다.
옛날엔 사람못살 곳으로 알려졌던 창성군 약수마을에도 온 나라가 다 아는 작고도 큰 학교가 있다.
뛰여난 인물을 배출해서도 아니고 남다른 교육성과를 안아와서도 결코 아니다.
인적드문 외진 산골의 작은 학교를 온 나라가 다 알도록 내세워주신 분은 우리의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주체44(1955)년 9월, 여느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강의가 진행되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창성군 약수중학교(당시)의 어느한 교실에 들어서시였다.
교원과 학생들 모두가 너무나 감격하여 어리둥절한채 인사의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있을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그냥 앉아서 공부를 하라고 손짓하시며 교실 맨뒤에 있는 의자에 앉으시여 교원이 교수하는것을 참관하시였다.
수업이 끝나 와-하고 달려와 품에 매여달리는 아이들을 대견히 바라보시며 머리도 쓰다듬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뒤미처 달려온 교장에게 교원들의 생활과 교수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교실도 좁고 운동장도 없어서 곤난하겠다고 하시며 양지바르고 경치좋은 곳에 학교를 새로 지을 터까지 잡아주시였다.
다음해 가을 또다시 마을에 찾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직접 학교건설현장에까지 나오시여 학생들이 고생하지 않게 난로대신 벽난로를 놓도록 하신것을 비롯하여 학교건설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보살펴주시였다.
학교가 준공된지 1년 남짓한 기간이 흘러간 주체46(1957)년 가을 학교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건설사업소에까지 들리시여 학교기숙사를 속히 지어주도록 하시고 교원들이 교육사업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원들이 새세대들을 잘 교양하여 그들을 모두 참다운 혁명가, 공산주의자로 키워야 하며 농민들속에서도 우리 당의 농업정책을 선전하는 선전자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문화혁명수행에서도 교원들이 선두에 서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교육사업은 직업이 아니라 혁명사업이며 매우 어려운 사업이고 인내성이 요구되는 사업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에 휩싸여있는 교원들에게 학교사업에서의 기본은 교수사업이며 학생들의 지식을 쓸모있는것으로 만들기 위한 교수방법은 어떤것인가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창성군 약수중학교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는 그 이듬해 7월에 이어 주체50(1961)년까지 해마다 계속되였다.
이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직관교수를 할수 있도록 수풍발전소와 구성방직공장들에 대한 견학도 조직하도록 하시고 왁새도 보내주시였으며 토끼와 염소, 양, 게사니 등을 직접 학생들의 손으로 기르면서 산지식을 소유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또한 학생들의 체력단련과 정서교양에 대하여서도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고 한 학생에게 철봉도 시켜보시고 학교에 피아노와 많은 민족악기까지 보내주시면서 생산과 결합된 운동, 교육과 결합된 체육을 발전시켜야 하며 학생들을 혁명적락관주의로 교양하여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조국의 미래가 무럭무럭 커가는 아름다운 꽃밭속에 혹시 움트지 못한 씨앗이라도 있을가봐, 채 터치지 못하고 시든 꽃망울이라도 있을가봐 늘 마음써오시며 사랑다해, 정다해 가꿔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손길아래서 학교의 학생들모두가 나라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자라났고 교원들은 훌륭한 원예사들로, 나라의 미래를 책임진 참다운 혁명가들로 준비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