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들부터 입게 하여야 한다시며

 2020.4.29.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비단옷을 행복한 생활의 표징으로 간주해왔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우리의 투쟁목표는 인민들이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며 기와집을 쓰고 살게 하는것이라고, 이것은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최종목표라고도 말할수 있다고 뜻깊은 교시를 하시였다.

비단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직물로서 우리 인민은 수천년전부터 비단을 짜기 시작하였고 비단짜는 기술이 매우 높았으며 그 종류도 여러가지였다.

우리 나라는 비단에서 조상이나 같다.

세계사에 《비단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비단무역로는 그 동쪽끝을 우리 나라에 두고있었다.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우리 나라의 비단은 그 질이 또한 최상의 수준에 달하였는데 우아한 광택과 울림, 보온성과 접촉감각, 흡수성이 좋은것으로 널리 알려져있었고 위생학적으로도 우월하였다.

녕변견직공장과 박천견직공장은 우리 나라의 이름있는 비단생산기지이다.

녕변견직공장은 특히 《약산단》, 《구룡단》으로 유명하고 박천견직공장은 《마안산》담요와 비로도생산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녕변땅의 절경인 약산동대와 구룡강의 풍치가 그대로 어려있다고 하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 친히 이름까지 지어주신 비단천들과 항일무장투쟁시기 마안산아동단원들에게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을 전설처럼 되새겨주고있는 담요들은 우리 견직공업의 자랑이다.

주체89(2000)년 6월 21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녕변견직공장과 박천견직공장을 몸소 현지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찾아주시였을 때 녕변견직공장도 박천견직공장도 자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있었으며 여러가지 난문제들을 안고있었다.

그이께서 가장 엄중시하신 문제는 공장들이 자기의 생산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비단천을 많이 생산하지 못하여 우리 인민들에게 제대로 보내주지 못하면서도 생산물을 다른 나라에 팔고있는 사실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이 자기가 누구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인지를 모르고있다고 엄하게 지적하시면서 비단천과 비로도를 많이 생산하여 우리 인민들부터 옷을 해입게 하고 나머지가 생길 때 팔도록 하여야지 지금은 절대로 수출하여서는 안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우리 민족, 우리 인민들부터 잘살게 하자는것입니다. 좋은 비단천으로 만든 옷을 우리 인민들부터 입게 하여야 합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0권 227페지)

죄책감으로 머리를 들지 못하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공장이 우리 인민의 사랑을 받는 공장이 되도록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현지지도하신 후 불과 3개월후에 녕변견직공장과 박천견직공장에서 생산된 질좋은 비단천과 비로도들이 당창건기념일을 맞으며 3천명의 녀성군인가족들과 결혼식을 하는 청년들, 대홍단과 포태종합농장에 파견된 제대군인들에게 공급되였으며 평양시안의 직물매대들에서도 봉사하기 시작하였다.

박천견직공장에서는 어버이수령님탄생 90돐을 맞으면서 위대한 장군님께 수백벌의 각종 비로도를 선물로 올리였는데 그것은 장군님의 현지지도를 받은 이후 기술혁신과 창의고안을 하여 만든 견본품들로서 문양과 색갈, 그 질에 있어서 눈부신 발전을 보여주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0종이나 되는 그 질좋은 비로도들을 보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높은 평가를 주시였고 모두 인민들에게 보내주라는 뜨거운 말씀을 주시였다.

참으로 우리 인민의 생활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인민사랑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구석은 없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빛나는 예지와 사랑에 의하여 우리의 비단공장들은 명실공히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라 우리 인민의 사랑을 받는 공장으로 재생되였으며 자랑스러운 전통직물생산기지로서 인민생활향상에 더욱더 이바지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