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현승철
2018.5.1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는 인민에 대한 사랑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신 우리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찍부터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시였으며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98페지)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며 인민을 찾아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은 세월이 흘러도 더욱 강렬해지고있다.
인민들의 집을 찾으시면 쌀독과 가마뚜껑을 먼저 열어보시며 생활형편을 알아보시고 아이들을 만나시면 책가방안의 교과서와 연필을 살펴보신 우리 수령님이시다.
인민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시며 공장과 농촌, 탄광과 광산, 어촌들을 찾으시여 인민들의 이야기를 정담아 들어주시며 그들과 정사도 의논하시고 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기도 하시며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신 위대한 수령님은 인민적정치가의 빛나는 귀감이시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자리에서 자본주의나라의 한 정객이 드린 물음이 있다.
《어디에 가든지 <이 언제는 우리의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일떠선것입니다.>라든가 <이 과수원은 전쟁을 하고있을 때 수령님께서 전쟁이 끝나면 만들자고 교시하시고 또 지도해주셨기때문에 생긴것입니다.>하고 말합니다. 모든것이 <김일성주석님의 지도>로 되였다고 하는데 주석님께서는 언제 그런 전문기술들을 공부하셨습니까?》
그의 호기심을 풀어주시려는듯 호탕하게 웃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이 나를 보고 여기는 조건이 좋으니까 과일이 잘 자란다고 가르쳐주고 건설부문 일군들은 여기에 언제를 쌓으면 물이 고여 관개용수로 쓸수 있다고 가르쳐준다고 대답하시였다.
너무도 통속적이고 너무도 자신을 낮추신 겸허한 그 이야기속에 인민을 스승으로, 전지전능한 존재로 여기신 그이의 숭고한 인민관이 집약되여있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궂은날, 마른날 가림없이 찾고찾으시며 해방직후부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걸으신 길은 무려 144만 5 000여리에 달한다.
백두산에서 한나산까지 301번 왕복한것과도 같고 지구를 14바퀴반이나 돌수 있는 거리와도 맞먹는 그 길을 걸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으신 단위는 무려 2만 600여개를 헤아린다.
조국의 북단 온성지구로부터 남단의 분계연선마을까지, 서해의 간석지마을로부터 동해의 자그마한 바다가마을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어가신 현지지도의 자욱자욱은 그대로 온 나라 집집에 닿는 뜨거운 사랑이였다.
어린이와 이야기할 때에는 어린이의 심정이 되여주시고 로인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허물없는 친구가 되여주시였으며 다심한 어머니와도 같이 사람들의 속생각까지 다 헤아려주신 우리의 위대한 수령님이시다. 그이께서는 로동자들을 만나면 그들의 기름묻은 손을 잡아주시고 농촌에 가면 밭머리에서 농민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시였으며 사람들을 만나 담화하실 때에는 롱담도 즐겨하시고 유모아와 생활적인 말씀도 하시였다.
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에는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잡곡밥을 달게 드신 이야기, 한낮이 기울 때까지 협동벌들을 돌아보시느라 때늦게야 렬차에서 풋강냉이로 점심식사를 하신 이야기, 인민을 위한 길인데 무엇을 가리겠는가고 하시며 신발이 감탕속에 쑥쑥 빠지는것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간석지에 첫 길을 내신 이야기…
지금도 만경대갈림길에 서면 해방된 조국에 개선하시여 꿈결에도 그리시던 고향을 곁에 두시고도 강선의 로동자들부터 먼저 찾아가신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이 어려오고 제강소에 가면 무너진 벽체우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페허를 하루빨리 가시자고 하시던 그이의 절절한 음성이 들려오는듯 싶다. 농촌에 가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농민들과 농사일을 의논하시며 앉으시였던 수수한 멍석이, 어촌에 가면 어부들과 함께 만져보신 그물이, 탄광에 가면 탄부들을 석탄증산에로 불러일으키신 숭고한 자취가 눈앞에 밟혀온다.
위대한 생의 마지막시기인 주체83(1994)년 7월 어느날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는 지금까지 인민을 믿고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살아왔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앞으로도 언제나 우리 인민들과 함께 있을것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바로 이런분이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부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근 반세기동안에 8 650여일을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고귀한 생애를 함축할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인민들속에서》, 이 한마디이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은 언제나 인민과 함께 계신 은혜로운 어버이의 한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