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족적인 애국성전으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우리는 박인진과의 사업을 잘하여 그를 조국광복회 조직성원으로 받아들이였으며 그의 영향밑에 있던 많은 천도교인들을 반일력량으로 묶어세웠습니다.》
1936년 5월 5일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으로서의 조국광복회를 창립하시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발표하신
그때 조선인민혁명군이 활동하던 지대에 천도교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일명 령북도정으로 불리우던 천도교의 박인진도정이 1936년 초겨울 사자봉밀영으로 들어오게 되였다.
박인진도정을 몸소 만나주신
단결하여 싸워야 승리하고 단결하지 못하고 사분오렬되면 조국의 해방도 이룰수 없고 백전백패한다는것은 력사가 가르치는 쓰라린 교훈이라고 하신
당시 전국의 천도교인들의 수는 300만이나 되였다. 그들은 오래동안 조선의 《한울님》만을 숭상하면서 교리에 충실하기만 하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낼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조선인민의 처지는 점점 더 비참해졌으며 일제는 더 기승을 부리며 조선에 대한 식민지정책을 강화해나갔다. 천도교의 투쟁구호로 되고있던 《척양척왜》, 《보국안민》에 대하여 아무리 목청껏 부르짖어도 그들이 일제를 타승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단결에 합세되지 않고서는 나라의 해방을 이룩할수 없었다. 민족단결만이 반일에 민족의 총력을 기울일수 있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책이며 민족대승의 길이였다.
참으로 단결은 승리와 영광으로 아로새겨진 조선혁명의 전 력사를 추동해온 진함없는 힘의 원천이였으며 그 거대한 생명력과 생활력은 사회주의의 전면적발전, 전면적부흥을 위한 오늘의 투쟁에서도 남김없이 확증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