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박상철
2026.4.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오랜 기간 혁명을 해오시면서 그가 누구든 일단 동지적관계를 맺으시면 그의 운명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주시였으며 수천수만의 혁명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크나큰 믿음을 주시고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조선혁명박물관 《혁명전우관》에는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군사정전위원회 우리측 수석대표로 활약하면서 전쟁승리에 크게 공헌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로부터 《조선력사에 기록된 사람》이라는 값높은 평가를 받은 남일동지에 대한 자료도 전시되여있다.
1950년 6월 25일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미제는 전선에서의 거듭되는 참패로 하여 이루지 못한 침략목적을 담판장에서 달성해보려고 1951년 6월말 우리측에 정전담판을 제기하여왔다.
이때로부터 남일동지는 근 2년간에 걸쳐 군사정전위원회 우리측 수석대표로 활동하면서 정전담판을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대로 승리적으로 결속함으로써 온 세상에 영웅적조선인민의 본때를 보여주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조인된 정전협정문건을 가지고 평양에 올라온 남일동지를 만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우리 나라 력사에 처음으로 미국과 같은 큰 나라한데서 항복문건을 받아냈다고, 전쟁에서 패한 일이 없다고 하는 미국이 처음으로 우리에게 항복서를 바쳤다고 호탕하게 말씀하시고나서 그에게 동무는 정전담판조인식장에서 미국의 항복서를 받아낸 사람이요, 동무는 조선력사에 기록된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정전협정문건의 조인.
실로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백승의 담력과 의지, 탁월한 군사사상과 령군술,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무비의 용감성과 대중적영웅주의가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모든 성과를 다 남일동지의 공로로 평가해주시면서 《조선력사에 기록된 사람》이라는 최상의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담판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남일동지에게 군사정전위원회 우리측 수석대표의 무거운 중임을 맡겨주시고 담판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문제들과 담판전략과 전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남일동지가 정전담판장에 타고나갈 승용차뿐 아니라 장령군복과 장화, 시계와 상아물주리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최상의 수준에서 갖추어주시였으며 그가 건강한 몸으로 담판을 잘할수 있도록 담당의사도 특별히 선발해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이 그대로 힘이 되고 지혜가 되여 남일동지는 담판 첫 시작부터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드센 배짱과 기질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적들을 호되게 다불러댈수 있었던것이다.
조선력사에 기록된 사람.
이름없는 평범한 지식인이였던 남일동지를 새 조선의 역군으로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고 세상사람들앞에 높이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의 말씀.
정녕 그것은 자기의 운명을 당과 수령에게 전적으로 의탁하고 혁명을 위해, 조국과 인민을 위해 싸워온 전사에 대한 가장 값높은 표창이였고 영원히 그 길을 변함없이 가기를 바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는 믿음과 기대의 표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