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모란봉기슭에는 웅장한 개선문이 서있다. 개선문의 기둥에 부각된 두개의 년도가 모두의 눈길을 모으고있다.
《1925》, 《1945》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속에서 두 년대를 비교해보면 순간이라고도 말할수 있다. 그러나 이 20년의 간고하고도 시련에 찬 투쟁이 있었기에 오늘의 시대가 있다고 생각할 때 두 년대는 많은것을 시사해주고있다. 개선문에 뚜렷이 아로새겨진 글발들을 바라볼수록 일제의 발굽밑에 신음하던 조국을 구원해주시려 14살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20성상 항일의 혈전만리, 눈보라만리길을 헤치신
돌이켜보면 1920년대초 조선인민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줄 위인을 애타게 갈망하고있었다.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며 압록강을 건느신
아버님이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유산으로 남기신 두자루의 권총을 안으시고
박달나무도 얼어터지는 혹한,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진드기마냥 달려드는 적들과의 피어린 격전, 끊임없이 겹쌓이는 굶주림,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책동으로 인한 반《민생단》투쟁의 회오리, 남패자로부터 북대정자에 이르는 간고한 고난의 행군…
국가적인 후방도,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의 백만대군과 결사전을 벌리시여 조국해방을 안아오신 우리
사랑하는 조국에 대한 열렬한 그리움과 인민의 운명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 이 숭고한 사상감정으로
하기에
《1925》, 《1945》!
이것은 항일의 불바다, 피바다속에서 풍찬로숙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