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인류력사의 려명기인 구석기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대동강류역을 비롯한 조선반도의 넓은 지역에서 련면히 살아오면서 자기들의 창조적지혜와 근면한 로동으로 자연과 사회를 끊임없이 개조변혁해왔다.
선조들의 이러한 생활과정을 보여주는 구석기시대유적들가운데는 1980년에 알려진 만달리동굴유적도 있다.
만달리동굴유적은 평양에서 동쪽으로 약 20㎞떨어진 황해북도 승호군 만달리에 있다.
동굴의 너비는 7~8m정도이며 길이는 13~14m정도이다.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학술연구집단이 1979년 10월과 1980년 5~8월에 이 유적에 대한 발굴을 진행하였다. 1979년에는 굴입구로부터 안으로 약 6m정도 들어가서 10m2정도의 범위로 구획을 선정하고 발굴을 진행하였다. 1980년에는 굴안을 밑바닥까지 완전히 드러내면서 전면적으로 발굴을 진행하였다.
동굴안의 퇴적층은 시기를 달리하는 3개의 층으로 구성되였다.
맨 웃층은 신석기시대문화층이고 가운데층은 인류화석과 석기, 골기가 나온 구석기시대문화층, 맨 아래층은 동물화석만 나온 층이다.
구석기시대문화층에서 나온 인류화석은 얼굴부분이 없는 머리통뼈와 비교적 온전한 아래턱뼈, 부분적으로 깨여진 아래턱뼈, 팔뼈, 넙적다리뼈 각각 1개 그리고 골반뼈 2개가 드러났다.
머리통뼈와 아래턱뼈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라 이 인류화석은 25~30살정도 되는 남자의것으로서 늦은 시기에 해당되는 신인이라는것이 확증되였으며 발굴된 지명의 이름을 달아 만달사람이라고 명명하였다.
구석기시대문화층에서 알려진 동물화석에는 갈밭쥐, 메토끼, 오소리, 여우, 동굴히에나, 메돼지, 사향노루, 복작노루, 노루, 사슴, 누렁이, 옛소, 산양이 포함되여있으며 사멸종은 동굴히에나와 옛소로서 15.4%를 차지한다. 동물상의 특징에 따라 이 유적의 지질시대는 상갱신세 상부에 해당되는것으로 평가되였다.
유적에서는 짐승의 뼈나 뿔로 만든 골기들이 적지 않게 드러났다.
골기들은 사슴뿔로 만든것과 노루를 비롯한 여러 짐승의 뼈로 만든것으로 구분할수 있다.
먼저 사슴의 뿔을 가공하여 만든것을 본다면 모두 8점인데 이중에서 2점은 석기같은 무거운 도구들을 두가닥으로 삐여져나온 끝에 끼워서 끈으로 묶어쓰게 되여있는것들로서 자루로 리용하였던것으로 인정된다.
다른 4점은 끝이 뾰족하게 생긴 칼모양의 도구들로서 앞끝의 한쪽 옆모서리는 거의 동실하게 갈았지만 다른쪽 옆모서리는 짝날로 날을 세웠던것들로서 생김새와 크기로 보아 칼처럼 쓰이던것으로 추측된다.
사슴뿔을 쪼개여 만든 나머지 2개 가운데서 하나는 앞뒤가 다 부러져나간것이고 다른 하나는 끝부분이 부러져나간것이다. 거의 전면을 갈아 송곳으로 만들어 리용한것으로 보아진다.
또한 짐승의 뼈로 만든 송곳모양으로 된 6점의 도구들도 알려졌다.
노루의 발뼈를 가지고 한쪽끝만 갈아 뾰족하게 만들어쓴것도 있고 짐승의 자뼈를 가지고 쥐기 좋게 생긴 넓은 쪽을 그대로 손잡이로 하고 다른 쪽끝을 뾰족하게 갈아 송곳모양으로 만든것도 있으며 히에나의 아래턱뼈밑부분을 가지고 쪼개진쪽의 한쪽 끝면만을 좀 갈아 넙적끝을 가진것도 있으며 비교적 큰 짐승의 어깨뼈를 갈아 만든 골기도 있다.
또한 짐승의 다리뼈쪼각들가운데는 조금씩 간 자리가 있는것도 있고 또 망치같은것으로 때려낸 자리가 있는것도 보인다.
이와 같이 만달리유적의 구석기시대문화층에서 알려진 골기들은 구석기시대 후기에 우리 선조들이 여러가지 골기들을 다양하게 만들어 생활에 적극 리용하였다는것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