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박사 부교수 김영윤
2025.4.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한자는 배우기도 힘들고 쓰기도 불편합니다. 그러므로 될수록 한자를 쓰지 말고 우리 말과 글을 살려쓰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한자사용을 페지하는 사업이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깊이 통찰하시고 이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해주시였다.
해방후 한자사용을 페지하는것은 인민들을 언어생활의 참다운 주인으로 만들고 조선어를 시대의 요구와 인민대중의 지향에 맞게 더욱 발전시키는데서 제기되는 필수적인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한자사용의 페지를 청소년들에 대한 민족어교육사업, 문맹퇴치사업을 밀접히 결부시켜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청소년들에 대한 민족어교육사업과 성인문맹자들에 대한 문맹퇴치사업은 지난날 배울래야 배울수 없었던 청소년들과 성인문맹자들에게 조선글을 가르쳐주는 중요한 사업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한자를 섞지 않고 순수 조선글자로 된 교과서와 교재들을 편찬하기 위한 사업이 힘있게 벌어져 다른 출판물들에서 여전히 한자가 쓰이고있던 1947년에 이미 많은 교과서들과 교재들이 조선글자로 발행되였으며 1948년에 이르러서는 전문학교나 고중, 대학들에서 쓰는 특수한 부문의 일부 교과서들을 내놓고는 대부분의 교과서와 교재들이 거의다 조선글자로 발행되였다. 또한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문맹을 퇴치하는 전 기간 글을 모르던 근로자들에게 철저히 조선글자만 배워주고 한자사용의 페지를 고려하여 한자를 배워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1947년말~1948년초부터는 문맹퇴치사업과 한자사용을 페지하는 사업을 다같이 전면적으로 밀고나가 거의 같은 시기에 이 두가지 사업이 끝나게 되였으며 1949년에 이르러서는 조선에서 문맹이 완전히 퇴치되였고 일반적인 출판물들은 모두 조선글자로 출판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한자사용의 페지를 점차적으로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자를 써온 력사가 오래고 조선말에 한자말이 많이 섞여있는것만큼 한자를 점차적으로 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한자사용을 점차적으로, 부분적으로 페지하기 위한 사업이 힘있게 벌어져 한자사용을 페지하기 위한 준비단계로서 여러 출판물들에서 일부 글들을 조선글자로만 내도록 하였으며 1948년부터는 일반출판물들을 다 조선글자로 출판하도록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광범한 군중속에서 한자를 쓰지 않는 기풍을 세우고 한자사용의 페지를 전 사회적인 사업으로 밀고나가도록 하시였다.
한자는 당시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있었으므로 한자사용의 페지문제는 어느한 부문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진행해야 할 문제로, 한자를 알고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전체 인민이 모두 참가해야 성과를 거둘수 있는 문제로 제기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한자사용의 페지가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깊이 자각하고 한자사용의 페지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해방후 한자사용을 페지하기 위한 사업이 힘있게 벌어짐으로써 1949년에는 한자사용이 페지되고 조선글자에 의한 유일한 서사체계가 확고히 수립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