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허강
2022.1.2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민족이 력사적으로 이룩해놓은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살려나가는것은 우리 당의 시종일관한 문예정책의 하나입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3권 84페지)
슬기로운 우리 인민이 창조한 문화유산들가운데는 1920년대부터 해방전까지의 기간에 창작된 진보적가요인 계몽기가요도 있다.
계몽기가요는 나라를 빼앗긴 우리 인민들의 눈물겨운 처지와 민족적울분,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항거의 감정을 반영한 노래로서 해방전에 우리 나라의 량심적인 문예인들에 의하여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통치하에서도 민족음악을 지키고 사람들을 반일사상으로 각성시키기 위하여 많이 창작되였다.
고향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속에 나라를 강탈하고 짓밟은 침략자들에 대한 원한과 항거의 감정이 깔려있다는데 계몽기가요의 계몽적의의와 진보성이 있으며 인민들이 부르기 쉬운 서정적이며 생활적인 노래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그러나 지난 시기 일부 편협한 사람들의 그릇된 관점에 의하여 계몽기가요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응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력사의 이끼속에 묻혀버릴번 하였다.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계승발전시키는 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견해와 관점을 가지고 그것을 적극 발굴고증하며 시대의 요구에 맞게 옳게 계승발전시키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견해와 관점을 가지도록 계몽기가요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9월 8일, 주체92(2003)년 1월 2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하신 담화와 주체96(2007)년 3월 20일,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문학예술부문 책임일군들과 하신 담화에서 계몽기가요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질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는 1920년대부터 해방전까지의 시기에 나온 진보적인 노래라고 명백히 밝혀주시면서 해방후에 계몽기가요에 대하여 똑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계몽기가요를 퇴페적인 류행가라고 하면서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고, 아직도 일부 사람들이 계몽기가요를 덮어놓고 부르지 못하게 한것은 매우 잘못된것이라고 심각히 지적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나라에서 류행가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것은 1920년대에 레코드를 통하여 노래가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되면서부터라고 가르치시면서 당시 창작가들은 자기의 노래가 예로부터 전해오는 구전민요보다 사람들속에서 많이 불리워진다는 뜻에서 류행가라는 이름을 붙이군 하였다고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는 일정한 제한성을 가지고있지만 우리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된다고 하시면서 계몽기가요에 대한 리해에서 나타난 편향을 바로잡고 계몽기가요를 다시 찾은것은 우리 나라 음악사에서 하나의 큰 사변과 같은것이며 주체성과 민족성을 살리고 력사주의원칙에서 민족음악유산을 계승하는데서 이룩한 귀중한 성과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관점을 세워주신데 기초하여 다음으로 계몽기가요의 보급선전에서 나서는 문제들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에 대한 보급선전사업을 잘하자면 우선 계몽기가요들을 발굴고증하고 정리하는 사업부터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계몽가요와 계몽기가요를 옳게 구분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몽가요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이르는 기간에 벌어졌던 애국문화운동의 영향밑에 나온 노래들인데 《학도가》, 《문맹퇴치가》, 《금주가》와 같이 문화계몽적인 성격을 띠는 노래들이 기본을 이루었으며 계몽기가요는 1920년대부터 해방전까지의 시기를 시대적배경으로 하여 나온 노래들로서 계몽가요에 비하여 반일계몽적성격이 강한 노래들이 주류를 이루고있는것으로 하여 창작보급된 시대적배경과 사상주제적내용이 서로 다르다고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계몽기가요종류의 이름을 잘 고증하여쓰도록 하시면서 동요와 예술가요라는 말은 해방전에 쓰던 말인데 우리 학자들이 동요는 아동가요로, 예술가요는 서정가요로 고쳐놓았다고 하시면서 아동가요, 서정가요라는 말은 노래가 나올 당시의 시대상이 잘 안겨오지 않으므로 해방전에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살려쓰도록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리하여 계몽기가요에 대한 전면적인 발굴수집과 고증정리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려나갈수 있는 적극적인 대책들이 취해지고 이와 관련한 학술토론도 진행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한 계몽기가요에 대하여 리론적으로 소개하는 사업도 잘 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에 대한 글을 쓰는데서는 해당한 가요들의 주제사상적, 음악형상적특징에 대하여 쓸수도 있고 구체적인 창작경위와 일제의 탄압책동에 대하여서도 쓸수 있으며 계몽기가요와 전통적인 민족음악과의 호상관계에 대한것도 쓸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계몽기가요와 관련한 글에서는 주체적립장과 함께 력사주의원칙을 잘 지켜야 당대 사회력사적조건과의 련관속에서 그 진보성과 음악사적의의, 제한성을 옳게 분석평가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계몽기가요의 창작보급에 기여한 창작가, 예술인들에 대해서도 정확히 평가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밖에도 계몽기가요가운데서 좋은 노래들을 골라서 재형상하여 보급할데 대한 문제, 계몽기가요를 부를 때 노래에 맞게 형상을 잘할데 대한 문제, 방송으로 내보낼 때 노래와 관련한 설명을 해줄데 대한 문제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리하여 《민족의 음악유산 계몽기가요》 등의 각종 도서와 신문잡지들에 계몽기가요의 개념과 력사, 내용과 형식, 창작가들을 소개하는 글들이 실리여 사람들이 계몽기가요를 더 잘 알수 있고 널리 부르는데 도움이 되게 되였으며 계몽기가요들이 예술적으로 훌륭히 형상되여 방송으로도 보급되고 록음카세트, CD화면반주음악으로도 널리 보급되였다.
특히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카프》작가편에서 해방전 문예인들의 생활경로와 문예활동 그리고 그와 결부되여 울리는 계몽기가요들이 실감있게 형상되여 널리 보급되였다.
이처럼 뜨거운 민족애와 천리혜안의 예지를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의 손길이 있어 계몽기가요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민족음악사에 길이 남게 되였으며 오늘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우리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우면서 사랑받는 음악유산으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