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녀성들은 항일혁명투쟁시기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손에 총을 잡고 피어린 투쟁을 벌렸으며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전선과 후방에서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결사전에 참가하여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였습니다.》
태선희동지는 누구나 잘 알고있는 조선의 첫 녀성비행사이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였고 빛나는 삶을 누려왔는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태선희동지는
태선희동지는 원래 비행기를 타고싶은 남다른 꿈을 가지고있었다. 하여 해방후 평양학원 항공과에서 비행기를 배웠고 그후 항공부대와 조국보위후원회 항공구락부에서 비행술을 련마하였다. 그런데 그의 소중한 꿈이 깨여지는 뜻밖의 일이 터지게 되였다.
녀성들은 체질상 비행기를 타기 힘들다는 리유로 제대되였던것이다.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자 원쑤놈들을 천백배로 복수할 출격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있던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도무지 믿을수 없고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참으로 기막힌 일이였다.
자기의 가슴아픈 심정을 그 누구에게 하소연할수도 없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가 부대를 나오게 된것은 녀성들의 힘을 믿지 않고 홀시하는 봉건사상에 물젖은 일부 일군들의 그릇된 관점과 편협한 사업태도에 의하여 빚어진것이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 1951년 3월 어느날 그는
항공부대의 사업정형을 료해하시던
이렇게 되여 태선희동지는 비행대렬에 다시 들어설수 있게 되였다.
첫 출격에서는 원쑤놈들의 전파탐지기들과 통신설비들이 집중되여있는 서해의 어느한 섬을 폭격하여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후 여러 차례에 걸치는 야간폭격전투에 참가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던 날 그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천덕꾸러기로 막돌처럼 버림받으며 죽지 못해 살아온 자기를 한품에 안아 어엿한 비행사로 키워주시고 영웅으로까지 내세워주시는 그 사랑이 너무도 고마와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그는
1951년 12월 31일 밤에는 적들의 발악적공세를 좌절시키기 위해 금포비행장과 인천항을 폭격할데 대한 전투임무를 받고 은밀히 적구로 들어가 수십대의 적기들과 여러개의 연유탕크, 막대한 군사장비들과 군수물자들을 불태워버리고 많은 적유생력량을 소멸하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
그리고 그에게 기념이 될만한것을 주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간편한 소형권총을 선물로 주시였다.
이런 다심한 사랑과 믿음으로 태선희영웅은 1952년 5월 새로 조직된 녀성비행중대의 첫 중대장으로 임명되였으며 녀성비행사들과 함께 조국의 하늘을 지켜 용감히 싸웠다.
이처럼 하늘을 지키는 수리개, 첫 녀성비행사의 빛나는 삶은 그의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고 이끌어준
그 품에서 우리의 수많은 녀성비행사들, 하늘의 용사들이 자라나 조국의 푸른 하늘을 대를 이어 믿음직하게 지켜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