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모루유적, 승리산동굴유적, 굴포리유적을 비롯하여 구석기시대 의 유적들이 평양시와 평안남도와 함경북도일대에서 발굴되여 조선반도 에서 인류력사의 첫 시기부터 사람들이 살고있었다는것이 고증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첫 구석기시대유적의 발굴은 한없이 숭고한 조국애, 민족애를 지니신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것은 단순한 학술상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사람의 기원문제를 정확히 밝히는데서 나서는 심각한 문제였다. 구석기시대의 존재문제는 조선사람의 조상을 바로 찾는 문제라고 말할수 있었다.
1950년대말까지만 하여도 일부 사대주의에 물젖은 학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다고 하여 우리 나라에는 구석기시대가 없었으며 다른 지역에서 구석기시대를 거친 사람들이 신석기시대에 이주해와서야 살았다는 터무니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러한 궤변을 타파하자면 구석기시대의 유적발굴사업에 큰 힘을 넣어 반드시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찾아내야 하였다.
그후 전쟁으로 모든것이 파괴되고 재가루만 날리는 페허우에 복구건설의 설계도를 펼치시던
그리고 큰 규모의 고고학연구집단과 고적발굴대를 무어주시였으며 고고학발굴과 연구사업의 물질기술적토대를 훌륭히 갖추어주시여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있던 구석기시대유물들을 발굴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대자연개조사업이 힘있게 벌어지는 속에 곳곳에서는 력사유적유물들이 련속 발굴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구석기시대의 유적만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실태를 깊이 헤아리신
이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문화층밑에서 구석기시대후기문화층과 구석기시대중기문화층이 차례차례로 드러났다.
첫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굴됨으로써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존재하였으며 이 땅에서 사람이 살고있었다는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였다.
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