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우리 나라에서 첫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굴되기까지

 2025.4.1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검은모루유적, 승리산동굴유적, 굴포리유적을 비롯하여 구석기시대 의 유적들이 평양시와 평안남도와 함경북도일대에서 발굴되여 조선반도 에서 인류력사의 첫 시기부터 사람들이 살고있었다는것이 고증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첫 구석기시대유적의 발굴은 한없이 숭고한 조국애, 민족애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떠나 결코 생각할수 없다.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것은 단순한 학술상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사람의 기원문제를 정확히 밝히는데서 나서는 심각한 문제였다. 구석기시대의 존재문제는 조선사람의 조상을 바로 찾는 문제라고 말할수 있었다.

1950년대말까지만 하여도 일부 사대주의에 물젖은 학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다고 하여 우리 나라에는 구석기시대가 없었으며 다른 지역에서 구석기시대를 거친 사람들이 신석기시대에 이주해와서야 살았다는 터무니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러한 궤변을 타파하자면 구석기시대의 유적발굴사업에 큰 힘을 넣어 반드시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찾아내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력사유적유물관리사업과 관련한 법령으로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그후 전쟁으로 모든것이 파괴되고 재가루만 날리는 페허우에 복구건설의 설계도를 펼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각종 건설공사과정에서 발견되는 유적유물을 보존관리할데 관하여》라는 내각지시를 하달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큰 규모의 고고학연구집단과 고적발굴대를 무어주시였으며 고고학발굴과 연구사업의 물질기술적토대를 훌륭히 갖추어주시여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있던 구석기시대유물들을 발굴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대자연개조사업이 힘있게 벌어지는 속에 곳곳에서는 력사유적유물들이 련속 발굴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구석기시대의 유적만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실태를 깊이 헤아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시사회때 원시인들이 쓰던 유물은 지금 남아있는것이 얼마 없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선조들은 당시 쇠가 없었기때문에 짐승의 뼈와 참대로 바늘을 만들어 썼을것이며 이 시기에 벌써 우리 나라의 문화가 발전하였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에 무한히 고무된 고고학연구집단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마침내 1960년대초에 서포항유적(당시 굴포리유적)으로 명명된 첫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굴되였다.

이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문화층밑에서 구석기시대후기문화층과 구석기시대중기문화층이 차례차례로 드러났다.

첫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굴됨으로써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존재하였으며 이 땅에서 사람이 살고있었다는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그후 검은모루유적을 비롯한 구석기시대유적들이 련이어 발견되여 우리 나라 력사의 유구성이 실물로 확증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