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새 출발을 한 목사

 2025.4.1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상인, 기업가, 종교인을 비롯한 광범한 대중을 망라하는 통일전선을 형성함으로써 애국적민주력량의 단결된 힘으로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촉진하여야 합니다.》

해방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건당, 건국, 건군위업의 중하를 다 안으시고 불철주야로 사업하시는 가운데서도 진보적인 종교계인사들을 자주 만나시여 그들을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애국의 한길로 이끌어주시였다. 그들속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잊지 못해 자주 추억해주신 창덕학교시절의 스승인 강량욱목사도 있다.

1945년 10월 18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댁에서 벌써 1시간가량이나 자주 창밖을 내다보시며 그 누구인가를 기다리고계시였다. 그가 바로 창덕학교시절의 스승인 강량욱목사였다.

잠시후 강량욱목사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급히 걸어나오시여 그를 뜨겁게 포옹해주시고 건강도 물어주시며 왜놈들의 학정밑에서 많은 고생을 했겠다고, 해방된 조국땅에서 선생을 다시 만나니 창덕학교시절이 감회깊이 되살아난다고 하시며 이제는 일본놈들이 망하고 나라가 해방되여 인민의 세상이 되였으니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로고를 생각할 때 너무도 한 일이 없는 그는 해방위업에 나서지 못할망정 그리스도교를 믿는 종교인이 된 자신이 부끄러워 자주 머리를 수그리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선생이 그리스도교를 믿은것은 일본놈들을 미워하는데로부터 시작된것으로 본다고, 우리는 종교인들의 애국적량심을 잘 알고있다고 하시며 그들중에는 천도교도정인 박인진도 있었는데 그는 종교인이지만 많은 천도교청년들을 교양하여 항일유격대에 보냈으며 우리를 물심량면으로 도와주었다고, 그는 일제에게 체포되여 희생되면서도 자기의 애국적지조를 굽히지 않고 항일유격대와 조국광복회조직의 비밀을 고수하였으며 일제에게 끝까지 항거하였다고, 그의 투쟁업적은 우리 나라 력사에 길이 남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강량욱목사는 천도교도정 박인진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들으니 정말 북받쳐오르는 감동을 금할수 없다고, 그래서인지 해방위업에 아무것도 바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게만 생각된다고 자기의 진정을 아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심한 자책이 어려있는 그의 솔직한 마음을 헤아려보시고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선생이 지난날 그리스도교를 믿은것은 문제될것이 없으며 해방된 조국에서 앞으로의 새 출발이 보다 중요하다고 다정히 이르시였다.

해방된 조국을 위해 새 출발을 맹세한 강량욱목사의 두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후 강량욱선생은 위대한 수령님께 다진 그날의 맹세를 지켜 인민정권건설과 새 조국건설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최고인민회의 서기장으로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광범한 군중을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묶어세워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는데 기여하였다.

전후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주석으로서 나라의 부강발전과 공화국의 국제적지위를 높이기 위하여 적극 활동하였으며 생의 말년에는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인민정권과 사회주의제도의 공고화를 위하여,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값높은 삶을 빛내여나갈수 있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 안기였기에 강량욱선생의 삶은 애국자의 빛나는 삶으로 오늘도 영원히 빛을 뿌릴수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