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조선녀성들은 남존녀비의 낡은 봉건사상으로 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천대를 받아왔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사회활동이란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일로 되여있었습니다.》
지나간 력사적시대에 조선녀성들은 단지 녀성이라는 리유로 사회적인 천시와 멸시를 받아왔으며 더우기 봉건적인 륜리도덕의 구속으로 하여 인간의 존엄과 권리마저 행사하지 못하였다.
19세기 전반기에 이르러 오래동안 존속하여온 봉건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남존녀비의 낡은 인습으로 문밖출입조차 못하던 녀성들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여 봉건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강화되였다.
이 시기에 활동한 이름난 녀류시인 김금원(1804-?)이 바로 이러한 녀성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성격이 활달하고 시적재능도 뛰여났다.
김금원은 녀성들도 봉건적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원하였다.
이에 대하여 그는 《호동서락기》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녀자도 인간이거늘 깊은 궁정이나 으슥한 규방에 일신을 묻고 마음대로 출입할수 없으니 이 어찌 죄없이 옥에 갇힌것과 다를바가 있으며 피는 꽃과 솟는 달, 명산대천이 문밖지척에 있으나 마음껏 보고 유람할수 없으니 이 어찌 누릴수 있는 자그마한 지향마저 짓밟히는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녀성으로 태여난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개탄이였으며 녀성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구속하는 불합리한 봉건사회에 대한 저주이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김금원은 마침내 집문을 박차고 세상구경을 나섰는데 이르는 곳마다에서 자기가 직접 보고 느낀것을 시로 읊었다.
그가 먼저 찾은 곳이 천하절승 금강산이였다.
온갖 만물이 소생하는 따스한 봄날 천하명승 금강산을 유람하게 된 그는 끝없는 희열에 넘쳐있었으며 기묘한 풍치, 황홀한 자연에 심취된 그의 입에서는 연해연송 경탄의 시구가 흘러나왔다.
이름난 곳 찾아드니 경치 더욱 새롭구나
꽃날리고 새가 우니 지난날이 한스럽네
봄빛짙은 나무숲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골짜기의 내물소리 가슴이 시원해라
이것은 시 《금강산에 들어가며》의 한구절이다.
갈수록 새로운 자태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금강산의 훌륭한 경치를 볼수록 골방에 깊숙이 박혀있던 지난날이 한스럽기 그지없었다.
금원은 몇달동안 금강산에 머무르면서 수려한 절경들과 유명한 고적들을 다 돌아보았으며 가는 곳마다 주옥같은 시를 남기였다.
그후 김금원은 조국산천의 그윽한 향취를 마음껏 마시며 《룡산의 배노래》, 《실비》, 《망신루에 올라》, 《통군정에서》 등과 같은 시들을 지어 아름다운 조국의 자연을 긍지높이 노래하였다.
이처럼 김금원은 당대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예리한 주목을 돌려 시창작을 하지는 못하였으나 골방살이에 한숨지으며 처지를 하소연하거나 님을 안타까이 그리며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을 읊조리던 보통 녀류시인들과는 달리 인간으로서의 자유로운 생활을 갈망하고 그것을 대담하게 실천할줄 알며 보면 보는대로 그 자리에서 시를 지울줄 아는 재능있는 녀류시인이였다. 그의 시문집으로 《금원시초》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