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박사 부교수 김성호
2025.4.9.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민족과 전세계가 우러러받드는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신것은 우리 인민의 최대의 영광이고 자랑이며 후손만대의 행복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생애의 전 기간 136개 나라의 7만여명의 외국인들을 만나주시였다.
그들속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무한대한 사랑과 믿음속에 삶의 진리를 찾은 도이췰란드의 녀류작가 루이저 린저도 있다.
루이저 린저는 일찍부터 히틀러파시스트를 반대하여 문필활동을 벌렸고 그로 하여 사형을 선고받은적도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후에는 필치가 예리하고 자존심이 강한것으로 하여 서방세계에서 부리사나운 비평가로 이름을 날리였다.
자본주의나라들을 휩쓰는 온갖 패륜과 패덕에 혐오감을 느끼고 인류의 리상사회를 동경하며 정의와 진리를 찾아 헤매던 그는 주체조선의 눈부신 발전모습과 조선인민의 정의의 투쟁을 직접 목격하고 커다란 충격과 환희에 휩싸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전기를 읽고 인생전환의 길에 들어섰다.
1980년 5월 현지지도의 바쁘신 속에서도 시간을 내시여 우리 나라를 방문한 루이저 린저를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계정치정세를 비롯하여 그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의 가슴아픈 인생사도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오늘 선생을 만나는것을 같은 사상과 지향을 가진 전우들의 상봉으로 귀중히 여기며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뜻깊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하고 분에 넘치는 말씀에 눈물을 모르며 강직하게 살아온 루이저 린저는 그만 북받치는 격정을 터뜨리며 흐느껴 울었다.
그후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위대성을 소리높이 칭송하는 글을 써내는것을 시대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 작가의 량심으로 간주하고 《조선방문기》의 원고를 한달도 못되는 기간에 집필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마다 그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도록 특혜도 베풀어주시였으며 여러 차례나 그를 만나주시고 뜨거운 사랑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1982년 우리 나라를 세번째로 방문한 루이저 린저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우리 나라의 여러곳을 돌아보면서 수령님의 위대성에 대하여 더욱더 절감하게 되였다.
조선방문을 마치고 떠나기 전날밤 루이저 린저는 위대한 수령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인민정권의 과업》을 다시금 읽으면서 한번 만나뵈오면 다시 뵙고싶고 두번다시 만나뵈오면 영원히 그 품에서 떠나고싶지 않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흠모의 정을 더욱 금치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로작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표해주실것을 간절히 소망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소망을 헤아리시여 친필을 남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을 보는 순간 루이저 린저는 온 우주를 받아안은 감정이였다.
인생의 황혼기에야 한생토록 갈망하던 위대한분을 만나뵈옵고 각별한 은정을 받아안은 루이저 린저는 그이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 너무도 아쉬워 《나는 우주를 안고가지만 마음은 이곳에 남겨두고 갑니다.》라고 절절히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흠모하며 따른 루이저 린저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 나라를 네번째로 방문하여 백두산에 오른 그는 진달래꽃다발을 엮어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올리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의 귀중한 가르치심과 뜨거운 사랑을 받아안은 그는 《나는 주석님을 받들다 죽겠습니다.》라고 자기의 진정을 열렬히 토로하였다.
많고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형형색색의 정치가들을 만나보면서도 진정한 위인을 찾지 못해 그토록 모대기던 그가 위대한 수령님의 위대성과 고매한 인간적풍모에 매혹되여 격정의 고백을 터친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지닐수 없는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신 절세의 위인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