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교수 박사 조용봉
2025.4.2.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언제 한번 편히 쉬지 못하시고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공장과 농촌을 찾아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다.》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시켜주시려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어버이사랑은 몸소 지어주신 벼수확기이름에도 뜨겁게 아로새겨져있다.
1974년 10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안개도 걷히기 전인 이른새벽에 새로 만든 벼수확기에 대한 시운전을 보시려고 청산협동농장(당시)에 나오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업기계화연구소(당시)의 일군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논판에 세워놓은 벼수확기를 가리키시며 올리훑는 형식인가고 물으시였다.
그렇다는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난 시기에는 벼수확기를 내려치는 식으로 했기때문에 실패하였는데 올리훑는 식으로 만들었으면 틀림없을것이라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벼수확기는 힘차게 달리면서 벼를 베여서는 가지런히 눕혀놓았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논판에 들어서시여 얼마나 바투 베였는가 벼그루의 높이를 가늠해보기도 하시고 베지 못하고 스쳐지나간 자리는 없는가 살펴보기도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며 벼수확기의 작업모습을 대견스럽게 지켜보시며 잘 만들었다고 치하해주시고나서 새로 만든 벼수확기의 이름을 청산리에서 첫 시험을 하였다는 의미에서 《〈청산리〉호 벼수확기》라고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몸소 그 이름을 지어주시였다.
《청산리》호 벼수확기!
정녕 여기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을 창시하신 력사의 고장 청산리가 농업생산의 모든 면에서 전국적으로 앞장서길 바라시는 그이의 숭고한 뜻이 깃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