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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7.27, 그날로부터 7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전승세대의 후손들은 《정예》를 자랑하던 미제침략군 《상승사단》들이 조선전쟁에서 당한 비참한 패배상에 통쾌함을 금치 못해하고있다.
1950년 11월 미제는 스미스의 미1해병사단을 우리 나라의 장진호반에 들이밀었다.
스미스는 일찌기 제1차 세계대전시기에는 괌도에서,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남태평양일대에서 련이어 《무공》을 세워왔다고 한다. 그리고 스미스의 미1해병사단으로 말하면 태평양전쟁기간에 1만 8 300여개의 하트훈장을 수여받아 미제침략군내의 표창력사에서
18세기 중엽에 조직된 이 사단은 미제의 해외침략에서 《공적》을 세워 《독수리부대》, 《해병대의 꽃》으로 불리웠다. 당시 사단의 장교들은 평균나이가 35~40살이였다. 병사들인 경우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로병》들이 대부분이였고 신대원이라고 해도 근무년한이 모두 2년이 넘었다.
바로 이러한 《상승사단》을 끌고 스미스는 맥아더의 《크리스마스총공세》명령을 승리적으로 실천하여 부대의 영예와 제놈의 이름을 세상에 떨쳐보려고 장진호반에 기여들었던것이였다.
적들은 기고만장하여 전투시작전부터 승전가를 부르며 앞으로 비행기를 타고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활주로까지 닦았다.
그러나 적들은 상대를 너무도 몰랐다. 영용한 조선인민군 군인들은
미1해병사단은 장진호반전투에서 2만 3 215명중 3 918명의 시체와 전상자, 7 313명의 동상자 등 많은 부상자를 냄으로써 부대의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하고말았다.
그 처참상이 얼마나 컸던지 장진호반에 들어왔던 미국기자들은 섬멸된 사단의 몰골을 보도하면서 《해병대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퇴각》이라고 야유하였다.
언땅을 폭파시켜 파헤치고 중상자와 시체들을 한꺼번에 매장해버린것으로 하여 무덤
수많은 무주고혼들을 내버리고 쫓기우는 《상승사단》의 비참한 패전상이 스미스의 초췌한 몰골에 그대로 비낀것이였다.
그러나 스미스의 몰골은 그대로 조선전쟁에 뛰여든 미호전광들의 비참한 말로였고 미제의 패배상의 축소판이였다.
우리의 전승세대가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에게 안긴 비참한 패배상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며 이 땅의 후손들은 승리의 전통을 길이 빛내여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