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과 그의 작품에 대한 위인의 평가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리훈
 2023.6.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삿갓은 옛날 우리 나라의 재능있는 시인의 한사람입니다. 김삿갓은 우리 나라 봉건사회말기에 활동한 특이한 시인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4권 252페지)

한없이 숭고한 민족애와 조국애를 지니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나날 빛나는 예지로 력사에 이름을 남긴 시인들과 그들이 창작한 고전문학유산에 대한 가장 옳바른 평가를 주시였다.

이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평가해주신 옛 시인들가운데는 조선봉건왕조 후반기에 활동한 풍자시인이며 방랑시인이였던 김삿갓도 있다.

주체51(1962)년 3월 20일 위대한 장군님께서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김삿갓의 생애와 그의 작품들에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학생들에게 김삿갓의 작품들이 진보적인 경향을 띠게 된 중요한 요인에 대하여 그의 생애와 결부시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김삿갓이라는 이름은 그가 방랑생활을 하면서 늘 삿갓을 쓰고 다녔다고 하여 사람들이 붙인 별명으로서 본명은 김병연이였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였던 그는 19살때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하였으나 할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한것이 문제로 되여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되였다.

아버지의 죄로 벼슬길이 막히게 된 김삿갓은 봉건통치배들을 증오하면서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에 오르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벼슬길이 막히고 나라에서 버림받은 존재로 되여 방랑생활을 시작한 그는 현실을 대하는 안목이 날카로웠다고, 전국각지를 떠돌아다니면서 량반통치배들의 비행을 눈여겨 살피였고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형편도 실지 체험하였다고, 이것이 그의 시창작에서 진보적인 경향을 띠게 한 중요한 요인이였다고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삿갓은 시작품들에서 단순히 자기의 방랑생활과 빈궁한 처지를 읊은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봉건사회말기의 부패한 량반통치배들을 폭로비판하고 착취와 압박밑에서 신음하는 인민을 동정하였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왜 인민들이 김삿갓을 사랑하였겠는가 하는것을 옳게 리해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이 김삿갓을 사랑하고 위해준것은 그의 일생이 동정을 받을만치 불우하였기때문만이 아니라고, 그것은 김삿갓이 인민들의 생활을 알아주었으며 자기의 작품에 인민들의 요구와 념원을 일정하게 반영하여 봉건통치배들을 비판하고 인민들의 비참한 처지를 동정하였기때문이라고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교시는 어떻게 되여 김삿갓이 인민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었고 또 그가 창작한 작품이 인민적이며 진보적인 성격을 띠게 되였는가 하는것을 밝혀주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계속하시여 김삿갓의 시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시작품전반의 특징에 대한 심오한 분석에 기초하시여 김삿갓을 풍자시인으로 평가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삿갓의 시창작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풍자이라고, 그의 시작품을 보면 풍자의 대상이 넓고 그 수법도 매우 다양하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어 김삿갓의 시창작에서 볼수 있는 풍자의 대상에 대하여 하나하나 밝혀나가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있어서 첫째가는 풍자의 대상은 량반이였다고, 량반통치배들을 극도로 미워하였던 김삿갓은 주로 풍자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폭로하고 조소하였다고 하시면서 대표적인 시작품들을 실례로 들어가며 설명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날에 평가해주신 풍자시들로는 《온종일 머리숙인 나그네》, 《이십수하 삼십객》, 《원생원》이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온종일 머리숙인 나그네》라는 시는 연초록두루마기를 입고 빨간 부채를 손에 들고 거드름피우는 량반들은 책 한권 읽은것이 없이 재물만 탕진하는 방탕아들이며 높은 벼슬아치들앞에서는 온종일 머리를 숙이고있다가도 시골사람들을 만나면 제가 제일인체 으시대는 비렬한자들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고, 《이십수하 삼십객》이라는 시도 역시 량반토호들의 비인간적인 처사를 폭로하고있다고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김삿갓의 독특한 풍자수법에 대하여서도 가르쳐주시였다.

뛰여난 문학적예지와 식견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원생원》이라는 시에서는 동음이의어를 리용하여 량반을 조소하였는데 이러한 수법은 매우 이채로운것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김삿갓은 언제나 기발한 착상과 능숙한 수법으로 량반을 비롯하여 무의도식하는 무리들을 풍자하였다고 하시면서 김삿갓의 시형식이 당시 량반들이 쓰던것과 다른것도 량반들에 대한 반발의 표현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량반을 풍자한 김삿갓의 시에는 량반통치배들에 대한 인민들의 증오와 규탄, 경멸의 감정이 반영되여있다고, 바로 여기에 김삿갓의 작품이 가지는 진보성이 있다고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삿갓은 량반통치배들을 풍자하는 시들과 함께 당시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여주는 시들도 많이 썼다고 하시면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같은 그릇으로 밥을 먹고 아버지와 아들이 단벌옷을 바꾸어 입으면서 문밖출입을 한다고 한 《가난을 읊노라》와 되박같이 작은 집이여서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설수도 누울수도 없으며 그나마 창문도 변변치 않고 쥐구멍이 사방에 뚫렸더라고 읊은 시 《비를 만나 촌집에서 묵으며》와 같은 작품들은 봉건사회에서 우리 인민들이 당하던 비참한 생활처지를 잘 보여준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계속하시여 김삿갓이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지게 된것은 그의 시에 당시 인민들의 지향과 념원, 처지가 반영되여있으며 그것이 인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때문이라고, 우리는 봉건사회가 몰락하여가던 시기에 활동한 재능있는 시인이였던 김삿갓을 응당 평가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삿갓의 작품들이 가지고있는 부족점에 대하여서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삿갓이 개별적인 량반관료들을 풍자하고 조소하는 시들은 썼지만 당시 사회제도자체를 비판하거나 폭로하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당시의 시대적조건과 김삿갓의 세계관에서의 제한성을 보여준다고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우리 민족의 문학발전사에 자취를 남긴 한 방랑시인의 생애와 시작품에 대하여 해박하고 깊은 리해를 가지시고 그 시창작의 특징과 진보성,제한성을 심오하게 밝혀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식견에 학생들은 또다시 크나큰 탄복과 감동에 휩싸였다.

이날에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력사연구에서 력사인물과 고전문학유산을 평가함에 있어서 언제나 인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그 진보성을 밝혀야 한다는 사상을 밝힌 강령적지침으로 된다.

정녕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동서고금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비범한 예지와 식견을 지니시고 우리의 력사학이 나아갈 앞길을 밝혀주신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스승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