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을 애국적인물로 평가해주시여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전동철 ,   2020.11.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높이 모신 주체교육과학의 최고전당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에 그릇되게 평가되였던 백제의 장군 계백을 신라의 침략을 반대하여 싸운 긍정적인물로 평가하여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49(1960)년 10월 29일 《삼국통일문제를 다시 검토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로작에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반대하여 진행한 전쟁을 침략적인 전쟁으로 규정하시고 신라군대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한 백제인민들과 군대의 투쟁을 지휘한 계백을 그릇되게 평가할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평가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당시에는 신라군대를 반대하여 끝까지 싸운 백제의 장군 계백을 그릇되게 평가하고있었다. 계백을 그릇되게 평가한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반대하는 전쟁을 하였다는 잘못된 인식, 다시말하여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반대하여 진행한 전쟁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보고 계백을 평가한데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견해를 부정하시고 천리혜안의 예지와 통찰력으로 《신라통일론》의 부당성을 밝혀주시면서 잘못 평가된 백제의 장군 계백에 대하여서도 바로 평가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먼저 신라통치배들이 백제와 고구려를 반대하여 벌린 전쟁의 침략적성격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사실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신라통치배들이 강토와 겨레를 하나로 통일하려고 한것이 아니라 령토팽창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당나라침략세력을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를 반대한것만큼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반대하여 진행한 전쟁은 침략적인 전쟁으로 보아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신라통치배들이 백제와 고구려를 반대하여 벌린 전쟁이 침략적인 전쟁인것만큼 5 000명의 병력으로써 10배에 달하는 신라군대의 네차례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하여 끝까지 싸운 백제군대와 계백장군의 투쟁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신라의 침략전쟁을 반대하여 끝까지 싸운 백제의 장군 계백을 긍정적인물로 평가하여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로부터 얼마후인 주체49(1960)년 11월 10일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조선력사연구실을 돌아보시면서 교원들과 학생들에게 벽에 걸려있는 애국명장들과 명인들의 초상가운데 백제의 장군인 계백과 같은 인물이 왜 빠졌는지 잘 리해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그의 초상을 그리지 않은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계백을 당나라와 신라군대를 반대하는 백제인민들의 반침략전쟁,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고수하기 위한 판가리싸움에서 용맹을 떨친 애국적인물로 평가하여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51(1962)년 9월 4일 《계백은 애국적인물이다》라는 담화에서 계백이 애국적인물이라는데 대하여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백제의 계백은 나라와 민족앞에 닥쳐온 위기를 막아낼 애국충정의 한마음을 안고 침략자와의 판가리싸움에 나섰던 애국적인 인물로 보아야 합니다.》 (김정일전집》 제5권 143페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일부 사람들이 아직도 7세기 중엽에 활동한 백제의 장군 계백을 민족사적견지에서 볼 때 긍정적인물로 평가할수 없다고 말하고있다고, 자신께서는 이미 삼국통일문제를 다시 검토하면서 계백에 대한 평가를 옳게 해야 한다는것을 강조한바있다고 하시면서 계백은 나라와 민족앞에 닥쳐온 위기를 막아낼 애국충정의 한마음을 안고 침략자와의 판가리싸움에 나섰던 애국적인 인물로 보아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인민대중을 력사의 주체로 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백을 평가하시기에 앞서 신라와 당나라 군대의 침공을 물리치기 위한 660년 백제인민들의 투쟁의 성격부터 먼저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삼국시기에 고구려는 삼국의 통일을 정책으로 내세우고 남방진출을 적극 다그쳐나갔다고, 고구려의 강력한 남방진출을 막아낼 힘이 없었던 신라통치배들은 외세에 의존하여 자기의 령토를 넓혀보려고 꾀하였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신라통치배들은 648년에 당나라와 두 나라 군대가 힘을 합쳐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다음 대동강이남은 신라가 차지하고 그 이북은 당나라가 차지한다는 비밀협약을 맺었으며 660년 백제에 대한 라당련합군의 침공은 이 비밀협약의 범죄적기도를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작전이였으며 그러므로 당나라와 신라군대를 반대하는 백제인민의 투쟁은 반침략투쟁,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되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백에 대한 평가에 앞서 백제인민들의 투쟁의 성격부터 명백히 해명해주신것은 반침략전쟁에서 그 어떤 개인의 역할보다 인민대중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을 결정적요인으로 보신데 있었다.

660년 백제인민들이 진행한 투쟁이 반침략전쟁으로서의 성격을 띠고있다는것을 명백히 천명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제인민들의 반침략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계백도 응당 애국적인 인물로 평가하여야 옳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신라군대의 침공을 반대한 백제군대와 인민들의 투쟁의 성격과 결부시켜 그들의 투쟁을 지휘한 계백을 평가하여야 한다는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참으로 독창적인 력사인물에 대한 평가였다.

백제인민들의 투쟁이 반침략투쟁,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이라는데 대하여 강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침략자들과의 판가리싸움에 나섰던 계백의 투쟁을 력사적사실에 기초하여 밝혀주시였다.

당시 부패한 백제봉건통치배들의 책동으로 당시 백제의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백제의 마지막왕인 의장왕을 비롯한 봉건통치배들은 당나라와 신라가 합세하여 무력침공을 기도하고있을 때에도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여 외적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부화방탕하고 안일한 생활에 파묻혀 세월을 보냄으로서 백제의 국력은 쇠약할대로 쇠약해지고 국내에서는 정치적혼란이 계속되였다. 이러한 시기에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이 동서량쪽에서 백제를 향하여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이렇게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준엄한 시기에 계백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수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황산벌로 달려나갔다고, 그는 황산벌싸움을 앞두고 병사들앞에서 용기를 잃지 말고 모두 분발하여 승리를 이룩하고 나라를 지키자고 호소하였으며 병사들과 함께 신라군을 맞받아 결사전을 벌렸다고 교시하시였다. 계속하시여 5만명의 신라군대는 3군으로 편성하여 침공하여왔으며 계백은 신라의 이 3군을 맞받아 물리치기 위하여 5 000명의 백제군대를 3개의 진지에 나누어 배치하였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0배가 넘는 적과 맞서 싸운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러나 백제군은 계백의 지휘밑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 신라군의 대규모적인 공격을 무려 네차례나 짓부셔버리고 수도에 대한 적의 공격기도를 일정하게 늦추어놓았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력량상의 큰 차이로 백제군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지는 못하였지만 황산벌전투의 전과정은 계백이 훌륭한 령군술을 지니고있었다는것을 보여주었다고 하시였다.

계백이 지휘한 황산벌전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나라를 지켜 용감하게 싸우다가 최후를 마친 애국명장 계백의 이름과 공적은 력사와 더불어 전해질것이라고 하시였다.

이처럼 력사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지식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에 의하여 그릇되게 평가되였던 백제의 장군 계백은 애국적인물로 평가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