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우리 나라의 력사적사실과 현실에 기초하여 연구하도록 이끌어주시여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교수 박사 리경영 ,   2020.4.8.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은 민족이 있고 국가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민족국가를 단위로 진행된다.

그러므로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여 전개되는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려면 자기 나라의 구체적조건을 과학적으로 타산하고 그에 맞게 활동을 벌려야 한다. 말하자면 자기 나라 혁명을 중심에 놓고 사고와 실천활동을 벌려야 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나날에 경제학의 리론문제들을 주체적립장에서 우리 나라의 력사적사실과 우리의 현실에 기초하여 연구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우리 나라 노예소유자국가형성문제를 주체적립장에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의 노예소유자국가형성문제도 빠른 시일안에 주체적립장에서 옳게 해명하여야 합니다.》 (김정일전집》 제2권 301페지)

경제학리론문제들을 우리 나라의 력사적사실과 우리의 현실에 기초하여 연구하는것은 경제학발전의 필수적인 요구이다. 경제학리론문제들을 우리 나라의 력사적사실과 우리의 현실에 기초하여 연구하지 않으면 그것은 조선혁명, 주체혁명위업에 이바지할수 없다.

1960년대초까지만 하여도 학계에서는 우리 나라 노예소유자국가형성문제에 대한 옳바른 견해를 가지고있지 못하였다. 당시 어떤 학자들은 우리 나라에는 노예소유자국가가 없었다고 하면서 원시사회로부터 비약하여 세나라시기에 봉건사회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학자들은 우리 나라에 노예소유자국가가 있었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많은 경우 세나라시기의 고구려, 백제, 신라와 결부시켜 론의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구체적인 력사자료에 기초하시여 세나라이전시기에 우리 나라에서는 노예소유자국가가 형성되였다는것을 과학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조선, 부여, 진국을 계급국가로 보시고 그의 사회경제적성격을 분석하시였다.

자료에 의하면 부여에서는 귀족들이 단번에 사람을 100여명씩이나 순장하였다. 순장은 노예주를 장사지낼 때 노예들을 함께 파묻는 노예사회의 잔인한 풍습이다. 물론 순장법은 봉건사회의 초기에도 일부 있었지만 그것은 노예사회의 잔재라고 보아야 한다. 순장은 어디까지나 노예소유자사회의 고유한 풍습이다. 부여에 이러한 순장제도가 있었다는것은 부여가 노예소유자국가였다는것을 말해준다.

《범금8조》의 내용도 고조선에 노예제가 지배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범금8조》의 3개 조항에는 남을 죽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자는 곡식으로 그 값을 갚아야 하며 남의 집물건을 도적질한자는 그 집의 노비가 되거나 노비가 되지 않으려면 50만의 돈을 내야 한다는것이 밝혀져있다. 《범금8조》에는 노예주를 한편으로 하고 노예와 평민을 다른편으로 하는 두 계급사이의 적대적대립과 투쟁이 사회관계의 기본을 이루고있었던 당대의 사회현실이 잘 반영되여있다.

진국의 전쟁포로와 관련된 자료도 진국에 노예제가 지배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진국에서는 한때 1 500명의 전쟁포로를 머리를 빤빤히 깎은 다음 들판에서 강제로동을 시켰는데 로동이 얼마나 가혹하였던지 3년동안에 무려 500여명의 전쟁포로들이 죽었다고 한다. 이 전쟁포로들이 노예였다는것은 의심할바없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부여의 순장제, 고조선의 《범금8조》, 진국의 포로노예와 관련된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고조선, 부여, 진국이 노예소유자국가였다는 결론을 내리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학계에서 오래동안 론의를 거듭해오면서도 똑똑한 견해를 세우지 못하고있던 우리 나라에서의 노예소유자국가형성문제에 과학적인 해명을 주심으로써 조선력사의 유구성과 그 발전의 합법칙성을 명백히 밝힐수 있는 넓은 길을 열어놓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음으로 우리 나라 봉건사회발생발전문제를 주체적견지에서 새롭게 밝혀주시였다.

1960년대초까지만 하여도 경제학에서는 봉건제도의 발생을 주로 유럽나라들의 자료들을 가지고 설명하였다.

경제학강의에서 로마의 노예제국가의 멸망과 봉건화과정에 대하여서는 장황하게 설명하면서도 우리 나라에서 봉건제도가 발생한 문제에 대하여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견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였다는것을 처음으로 헤아리시고 그것을 바로잡아주신분은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당시 학계에서는 세나라의 사회경제적성격에 대하여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있었다.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생산력발전수준을 유일한 기준으로, 출발점으로 하여 세나라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를 해명하려고 하고있었다. 그러다보니 세나라시기를 노예사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속에는 세나라시기 우리 나라의 생산력발전수준이 봉건제도에 맞으리만큼 높은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그것을 애써 증명하려고 력사적사실을 외곡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사대주의, 교조주의현상은 대비연구를 한다고 하면서 다른 나라 력사의 틀에 맞추어 세나라의 사회경제적성격에 대하여 해석하려고 하거나 세나라가 사회경제발전에 미친 이웃나라들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데서도 나타났다. 일부 학자들은 세나라가 노예사회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원시사회로부터 봉건사회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 비약의 요인을 외부의 충격적영향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이웃나라 문화의 기초가 없었더라면 조선봉건주의의 비약적인 발생은 없었을것이라느니, 이웃나라문화의 영향을 받아 우리 나라 력사가 한계단 높은 수준으로 비약하는 과정을 밟았다느니 하고 주장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사대주의, 교조주의적경향에 대해 지적하시면서 해당 사회의 사회계급적성격을 밝히는데서 생산력발전문제가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되지만 그것을 절대화하거나 문제해결의 중심에 놓아서는 안되며 해당 사회의 사회경제적성격을 해명하는데서는 그 사회의 계급관계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옳게 해명하는것을 중요하게 보아야 하며 우리 나라 력사를 억지로 다른 나라 력사의 틀에 맞추어 설명하려고 하거나 자체발전의 합법칙성을 무시하고 외부적영향을 절대시화해서는 안된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세나라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연구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적사고방식을 철저히 없애고 이 문제를 어디까지나 우리 나라 사회발전의 합법칙성과 력사발전의 구체적실정에 기초하여 해명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세나라이전시기에 존재한 고조선과 부여, 진국의 력사를 어떻게 푸는가에 따라 고구려를 비롯한 세나라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의 해명에서 큰 전환이 일어날수 있다고 하시면서 세나라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를 그 이전시기 력사와 잘 결부시켜 통일적으로 검토하며 세나라시기의 력사를 자료가 명백한 조선봉건사회의 력사와도 결부시켜 대비하여 연구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세나라이후시기의 국가가 봉건사회였다는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한것만큼 그것과 대비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내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쥘수 있을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세나라의 사회경제적성격해명에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있는 근원과 그 해결방향을 천리혜안의 예지로 꿰뚫어보시고 문제해명의 근본열쇠가 바로 주체적립장을 견지하는데 있다는것을 명철하게 결론내리시였던것이다.

그후 학계에서는 세나라에 선행한 고조선, 부여, 진국이 노예소유자국가였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그 과거국가에 토대하여 설립된 우리 나라 력사상 첫 봉건국가였다는것을 명백히 밝히고 학계적인 의견일치를 보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나라의 력사적사실과 현실에 기초하여 경제학을 연구하도록 이끌어주신것은 경제학리론발전에서 불멸의 업적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