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병동에도 찾아오시여

편집부
 2016.10.4.

어머니의 사랑은 한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혁명동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신 절세의 위인의 따사로운 사랑의 해빛은 이 땅 어디에나 골고루 비쳐간다.

주체51(1962)년 2월 중순경이였다.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돌림감기로 하여 많은 학생들이 앓아눕게 되였는데 대부분 학생들은 출석률을 보장하기 위하여 아픔을 참아가면서 수업에 참가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경제학부 당위원장을 만나시고 감기로 앓고있는 학생들을 빨리 입원시켜 치료하도록 대책을 세우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대학에서는 감기가 심한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시키고 경한 환자들은 3호기숙사에 격리시켜 치료를 받도록 긴급대책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감기환자들이 격리되여있는 곳을 알아보시고 거기에 가보자고 말씀하시였다.

초급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에 펄쩍 놀라며 그것만은 안된다고 굳이 만류하였다.

환자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일체 출입이 금지되여있어 모두가 꺼려하는 그런 격리환자병동에 어떻게 위대한 장군님을 모실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내걱정은 말라고, 우리가 가서 병문안도 하고 그들을 위로해주면 그들의 건강이 더 빨리 회복될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기어이 격리병동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호실에 들어서시는 순간 환자들은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라 인사도 변변히 드리지 못하였다.

날마다 뵙고싶은 자애로운 영상이였고 날마다 듣고싶은 친근한 음성이였건만 이런 곳에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게 된것이 다 앓고있는 자기들의 잘못인것만 같아 죄책감과 송구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따뜻한 음성으로 왜들 일어나는가고, 그냥 자리에 누워있으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한 학생의 침대 옆자리에 앉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아직 몸에 열이 나는것 같다고 하시면서 치료는 어떻게 받으며 식사는 제대로 하는가고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돌림감기를 앓고있는 자신이 민망스럽고 위대한 장군님의 건강이 념려되여 머리를 숙이고 대답조차 올리지 못하는 그 학생의 심중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한테 감기가 전염될가봐 그러는 모양인데 나에게는 감기가 옮지 않으니 마음놓으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안심시키시였다. 그러시고는 방이 좀 춥다고 하시며 감기환자는 땀을 쭉 내야 열이 떨어지는데 방이 이렇게 차서 되겠는가고, 모포들을 더 가져와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학생들의 눈가에는 항일의 나날 험한 눈보라길을 헤치시며 전염병병동에 찾아오시여 대원들을 사랑의 한품에 따뜻이 안아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 모습이 가슴뜨겁게 어려왔다.

정녕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위대한 장군님은 혁명동지들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고계시는 인간사랑의 최고화신이시였다.

감격에 목메이는 학생들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을 일상적으로 단련하면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사람은 건강해야 맡은 일을 제대로 할수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당과 수령에게 충실할수 없습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사업에 투신할수 없고 혁명적열정을 낼수 없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환자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감기치료를 잘하라고 고무해주시고 호실을 떠나시였다.

자신의 한몸도 돌보지 않으시고 동지들을 찾아와 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따뜻한 사랑이 세상에 둘도 없는 명약이 되여 학생들은 그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학습전투를 더욱 힘있게 벌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