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종합대학교육을 계속 발전시켜나가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황신철 ,   2020.12.26.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려운 새 조국건설시기와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를 비롯하여 혁명과 건설의 매 시기, 매 단계마다 대학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종합대학이 당과 혁명이 요구하는 훌륭한 민족간부들을 많이 육성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습니다.》

해방후 인민의 첫 대학 김일성종합대학을 창설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승리할 래일을 내다보시고 대학교육을 중단없이, 먼 앞날을 내다보며 줄기차게 진행해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누구나 오직 전쟁승리에 대하여서만 생각하고있던 주체39(1950)년 11월 14일 교육부문 일군들을 만나주시고 전쟁의 준엄한 조건에서도 대학교육사업을 계속 진행할데 대한 전시교육방침을 제시하시였다.

당시 후퇴가 끝난후에도 교육부문 일군들은 전시 교육사업경험이 없는데다가 모든것이 파괴되고 교원들마저 부족한 형편에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일부 일군들은 적들의 폭격을 구실로 종합대학을 중국동북지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까지 들고나오면서 교육사업에는 거의 관심을 돌리지 않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실태를 깊이 헤아리시고 일부 일군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주시며 대학교육사업을 정상화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을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국주의침략자들과 생사를 판가리하는 치렬한 전쟁을 하고있는 조국땅에서 대학생들이 공부하여야 제국주의의 침략적본성과 범죄적만행을 더욱 똑똑히 알고 원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억세게 싸우는 훌륭한 인재로 자라날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싸우는 조국땅에서 전시교육사업을 계속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과 후방에 파견된 대학교원들을 소환하여 대학에 보내도록 하시였으며 흩어졌던 교원들을 다 모으는 한편 대학교원을 할만 한 사람들을 더 많이 찾아내도록 하시여 다시 대학교육을 시작할수 있는 교원대렬을 꾸려주시였다.

종합대학교원대렬은 위대한 수령님의 전시교육방침을 받들고 소개지를 떠나 주체40(1951)년 1월말에 평양에 도착하였으나 적들의 무차별폭격이 계속되는 조건에서 대학본청사에서 교육사업을 하기는 어려웠으므로 락랑구역 룡호리로 자리를 옮기고 여기서 전시교육사업재개준비를 하였다.

대학을 보다 안전한 지대에로 소개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에 따라 학부단위로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였으며 전시조건에서 학생원천문제를 풀기 위하여 특설예비과를 설치하고 신입생들을 받아들여 주체40(1951)년 7월 16일부터 본과생양성을 위한 예비과교육을 시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학년도 개교준비사업을 잘할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주체40(1951)년 5월 30일에 소집한 내각협의회에서 새 학년도 대학생모집을 위하여 대학에 다니다가 군대에 나간 사람들과 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우고있는 일부 군인들을 소환하여 대학에 보낼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1(1952)년 1월 23일 《전선에서 전투원들을 소환하여 대학에 보낼데 대하여》라는 최고사령관지시를 하달하시여 대학생출신의 전투원들을 모두 대학으로 불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1(1952)년 2월 평양과 거리도 가깝고 반항공조건도 좋으며 학부들을 한곳에 모을수 있는 평성시 백송리(당시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 백전리)로 대학을 옮길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하여 주체41(1952)년 3월초에 백송리에 도착한 대학의 교직원, 학생들은 수령님의 높으신 뜻과 강령적교시를 심장에 새기고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면서 반토굴로 된 교사와 기숙사, 식당, 야외강의실들을 꾸리였으며 전시과정안을 편성하고 교원들에게 학과목을 분담하여 교수요강을 작성하는 동시에 교편물을 만드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학생들도 부족한것이 많았지만 모든것을 이겨내며 학습에 전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탄생 40돐을 앞둔 주체41(1952)년 4월 12일과 13일 이틀간에 걸쳐 백송리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우리 김일성종합대학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직원, 학생들앞에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 《조국해방전쟁의 전망과 종합대학의 과업》에서 전쟁은 반드시 우리의 승리로 끝나는것만큼 승리의 신심을 가지고 전후에 파괴된 인민경제를 복구건설하기 위한 민족간부양성사업을 잘하는것이 종합대학 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하시면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교육사업에서 교조주의와 민족허무주의를 배격하고 주체를 철저히 세울데 대하여서와 특히 자연과학과목교수를 실천과 밀접히 결부하여 깊이있게 진행하며 학생들이 과학기술도서들을 많이 읽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학생들이 《학습도 전투이다!》는 구호를 들고 전선에서 싸우던 기백으로 학습에 전심전력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백송리현지지도이후 교직원, 학생들의 열의는 비상히 높아졌으며 전시 대학교육사업에서는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대학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를 받들고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극복하고 주체가 선 교육강령을 새롭게 작성하는 사업을 전투적으로 진행하였다. 물리학부만 보더라도 조선혁명에 참답게 이바지할수 있는 인재육성을 목표로 한 과정안을 다시 작성하고 수십건의 교수요강을 새로 만드는 한편 자모산골짜기에 실습기지를 정하고 실험기구제작소를 자체의 힘으로 꾸려놓았으며 각종 실험기구와 교편물들을 만드는데 지혜와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송리를 다녀가신 이후 대학 교원, 학생들과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전쟁의 어려운 형편에서도 대학교육을 위하여 많은 참고도서들과 실험설비, 기구들, 그리고 학용품들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송리를 현지지도하신 이후 대학의 교직원, 학생들은 집단적혁신을 일으켜나갔으며 그리하여 주체41(1952)년 12월 5일 전쟁의 불길속에서 제3기 졸업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가렬처절한 3년간의 전쟁과정에 종합대학이 제2기의 졸업생들을 키워낼수 있은것은 정녕 위대한 수령님의 선견지명과 다심한 사랑의 결과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쟁의 준엄한 환경속에서도 종합대학에서는 교육사업을 힘있게 벌려 전쟁승리와 전후복구건설에서 한몫 할수 있는 여러 분야의 인재들을 키워내게 되였으며 나라의 민족간부육성의 중심기지로서의 물질적토대와 경험을 쌓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