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2017.4.27.

주체46(1957)년 6월 28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일하는 서평양오수간선건설공사장을 찾아주시였다. 공사장에서는 모란봉교예극장을 축으로 동서 100여m의 넓은 구간에 관을 묻기 위해 너비 9m, 깊이 7m의 도랑을 파는 작업이 진행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산더미같이 쌓인 진흙탕을 밟으시며 오수관을 묻을 도랑가까이로 가시여 깊숙이 판 도랑을 한동안 내려다보시다가 너무 깊이 팠다고, 마치 큰 운하같은데 이렇게 깊어서야 물이 빠지겠는가고 하시며 몇m 나 팠는가고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7m깊이로 팠다는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것은 다 교조주의의 후과라고 지적하시면서 쏘련의 씨비리지방과 같이 땅이 5m~ 6m씩 어는데서는 깊이 파야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깊이 파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시였다.

참으로 명철한 판단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교직원, 학생들을 둘러보시며 여기가 혜산이나 중강진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평양지방은 겨울에 땅이 1m도 되나마나하게 어는데 무엇때문에 이렇게 깊이 파겠는가, 이 부문 일군들이 교조주의적으로 설계한것 같다고, 설계일군들이 쏘련것만 보고 하수도는 의례히 이렇게 깊이 파야 하는것으로 아는것 같다고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나라의 기후조건으로 보아 3m정도만 파면 될 하수도구뎅이를 이렇게 깊이 판것은 이 부문 일군들이 다른 나라의 설계를 교조주의적으로 받아들인데 원인이 있다고, 그러다보니 많은 로력과 자재를 량비하였다고 하시면서 《건설부문에서 교조주의를 철저히 뿌리빼고 주체를 세워야 하겠습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

7m와 3m.

이것이 어찌 단순한 수자상차이랴.

이날 일군들과 교직원, 학생들은 교조주의의 후과를 뼈저리게 체험하면서 주체확립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