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을 통해 밝혀주신 상품화페관계의 실상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김명 ,   2020.4.2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김일성종합대학시절에 천재적인 예지와 뛰여난 식견으로 대학생들이 자기의것을 귀중히 여기고 깊이 알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였다.

세나라시기 상품화페관계발전면모를 고전문학작품인 《온달전》과 《정읍사》를 통하여 밝혀주신 그이의 명철한 가르치심을 통하여서도 우리는 그것을 잘 알수 있다.

주체50(1961)년 7월 21일 조선인민경제사과목 강의에서 학생들은 17세기 《엽전》이라고 부르는 상평통보가 나오기 전의 화페관계문제를 놓고 론쟁을 벌렸다. 그것은 상평통보가 전국적범위에서 류통된 우리 나라의 첫 주화라면 상평통보가 나오기 이전시기에 생산된 상품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교환되였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어떤 학생들은 집짐승인 양을 들어 설명하였으며 어떤 동무들은 이 시기 서유럽의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상품교환시 사용된것을 자료로 들면서 설명하였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우리 나라에서 상품화페관계발생발전의 력사적사실과 자료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자본주의가 정상적인 발전의 길을 걸어온 유럽나라들의 력사적사실을 놓고 이야기하였다. 당시 교과서나 강의에서 이런 식의 설명이 기본으로 되여있었던것이다.

이러한 실태를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이 요즘 17~18세기 화페류통문제를 놓고 론쟁을 자주 하는데 이것은 경제학을 전문으로 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일이라고 치하해주시고나서 제기된 문제를 하나하나 해명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봉건사회에서 상품화페관계가 어떻게 발전하여왔는가 하는것을 리해하자면 먼저 상품화페관계의 발생발전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원시공동체말기와 고대국가시기의 상품화페관계발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고나서 봉건사회의 첫시기인 세나라시기 상품화페관계발전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세나라시기에 관청수공업과 함께 농민들의 가내수공업과 전업적수공업이 발전하면서 상품화페관계가 급속히 확대발전되였다고 하시면서 이시기 상품화페관계의 발전은 장의 형성에서 찾아볼수 있다고, 당시 장이 있었다는것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여 명백히 알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삼국사기〉의 〈온달전〉에는 평강공주가 금팔찌를 팔아 여러가지 물건을 사들이면서 온달에게 장에 가서 살찐 말이 아니라 비루먹은 군마를 사오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3권 243~244페지)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것처럼 《삼국사기》의 《온달전》에는 평강공주가 왕궁을 탈출하면서 가져온 금팔찌를 팔아 저자에서 토지와 가옥, 노비, 소와 말, 그밖의 여러가지 기물들을 사들이면서 온달에게 장에 가서 살찐 말이 아니라 비루먹은 군마를 사오도록 한 기록이 있다.

문학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온달전》에서의 이 부분을 공주의 슬기와 온달을 상무정신의 체현자로 내세우는 그의 애국심, 그가 지닌 근로하는 인민의 성격적특질을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만 설명해왔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온달전》을 단순히 문학작품으로만 여기면서 그것을 력사적인 사실이 담겨졌다기보다는 하나의 허구적인 이야기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왕의 딸인 공주와 《바보온달》이 결합되게 된것은 당시 인민들의 념원으로부터 나온 허구적인 이야기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온달전》의 금팔찌부분은 문학적측면에서 공주의 성격적특징을 밝히는데 지향된 형상세부라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학적측면에서만 론의되여야 할 세부가 아닌것이다.

작품에서 금팔찌세부가 그려지게 된것은 당시 고구려에서 상품화페관계가 발전한것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으며 이것은 중세 우리 나라의 상품화페관계발전과정을 립증하는데서 중요한 사료로 되는것이다.

세나라시기 상품화페관계발전의 이러한 실상은 바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삼국사기》에 실려있는 《온달전》에 대한 가르치심으로부터 밝혀지게 된것이다.

스칠수도 있는 고전문학작품의 자그마한 세부로부터 시작하여 세나라시기 장의 형성과 발전된 상품화페관계의 실상을 밝혀내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분석력에 학생들은 감탄하여마지 않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민간상업은 장을 통해서만 진행된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민간상업의 발전은 상인들이 여러가지 상품을 가지고 여러곳을 떠돌아다니면서 파는 행상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이께서는 행상인들은 농촌만이 아니라 도시의 장들을 순회하면서 상업활동을 벌리였다고 하시면서 그러한 사실을 백제의 인민가요 《정읍사》를 통하여 설명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것처럼 백제가요 《정읍사》는 세나라시기 행상인들이 도시의 장을 순회하면서 상업활동을 벌린 사실을 뚜렷이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되고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이 가요는 전주에 속한 고을인 정읍에 사는 한 행상인이 오래동안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 안해가 산우에 있는 바위우에 올라가 남편이 떠나간 길쪽을 안타까이 바라보면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절절한 심정을 담아 부른 노래라고 한다.

정읍에 사는 녀인이 지어부른 노래라는 뜻에서 그 이름을 《정읍사》라고 하였던것이다.


달아 높이 돋아서

어기야 멀리 비쳐오시라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온 장터 다니시는가요

어기야 진창을 디디실세라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어데다 놓고계시라

어기야 내 가는데 캄캄할세라

어기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세개의 분절로 구성된 가요에서는 남편에 대한 안해의 절절한 사랑의 감정이 소박하고 진실하게 노래되여있다.

여기서 남편을 기다리는 안해의 애타는 심정, 절절한 사랑의 감정은 단순한 부부간의 사랑에서 흘러나온것이 아니라 재난과 불행의 위협을 받으며 무권리와 봉건적억압에 시달리는 당대 백제인민들의 구체적인 생활에 바탕을 두고있다.

백제봉건사회에서는 발전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상업이 일정하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상업에 종사하는 상인은 여러 계급과 계층가운데서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였다.

《정읍사》는 바로 중세초시기 행상인의 안해가 남편의 신상에 해가 미칠것을 걱정하여 부른 노래로서 여기에는 일정하게 어지러운 백제봉건사회의 시대상도 비껴있는 동시에 그것을 통하여 백제에 성행하였던 민간상업의 발전상황도 감득할수 있게 하는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세나라시기 행상인들은 자기 나라만이 아니라 이웃동족의 나라를 넘나들면서도 장사를 하였다고 하시였다.

이를 통하여 세나라시기에는 장을 통하여서만이 아니라 행상을 통해서도 상업이 발전하였고 상품화페관계가 장성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는것이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온달전》과 《정읍사》와 같은 고전문학작품들을 통하여 세나라시기 상품화페관계발전상황에 대하여 과학적이면서도 알기 쉽게 학생들에게 해설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세나라시기뿐아니라 첫 통일국가인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상품화페관계발전의 력사적과정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인 자료와 분석을 안받침하여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고전문학작품들을 실례를 들어가며 풍부하면서도 구수하게 우리 나라 상품화페관계발전의 력사적과정에 대하여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이날의 가르치심은 우리 나라 고대중세경제사를 정립하는데서 불멸의 지침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