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김일성종합대학의 민족사교육과 연구에 깃든 위대한 령도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교수 박사 리광희 ,   2019.12.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창립은 우리 나라 민족간부육성과 과학문화발전에서 새 기원을 열어놓은 력사적사변이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60권 124페지)

해방된 조선이 하루빨리 식민지통치의 후과를 가시고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로 발전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일제에 의하여 혹심하게 외곡말살된 우리 민족의 력사를 바로잡고 각계각층의 인민들에게 민족자주의식과 애국심을 북돋아주는것이였다.

일제식민지통치의 후과로 학자력량이 매우 부족한 형편에서 민족의 인재들을 모아 먼저 종합대학을 창설하고 그것을 모체로 하여 전반적인 교육과 과학발전을 이룩하자는것이 바로 우리 수령님의 원대한 새조국건설구상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우리 나라 민족사교육과 과학연구를 진행할 학자력량과 학제를 마련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8월 16일 자신의 명의로 된 교원위촉장을 발급하시여 전국의 방방곡곡에 있던 학자들을 다 데려오도록 하시였다. 이 교원위촉장을 받고 남조선에서도 력사학자들인 박시형, 김석형을 비롯한 20여명의 우수한 학자들이 주체35(1946)년 8월 중순 서울을 떠나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창립당시 68명의 교원학자들가운데는 우수한 력사학자들이 들어있었다.

창립당시 대학에는 7개의 학부들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인 문학부에서 력사교육과 연구를 진행할수 있게 되였고 주체36(1947)년 9월부터는 문학부가 력사문학부로 개칭되였으며 주체38(1949)년 새 학년도를 맞으면서 력사학부가 따로 나오게 되였다.

그리고 력사학부안에는 조선사학강좌를 두고 여기에 6명의 교원들을 배치하였으며 주체39(1950)년 4월에는 력사학부에 전문연구사업을 맡아할 연구실을 새로 내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대학에서 민족사교육과 연구사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원만히 보장해주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개인들과 기관, 단체들에서 가지고있는 력사자료들을 수집하는 사업들을 광범히 진행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 따라 김일성종합대학창립 1돐기념일에 즈음하여 북조선 전체 인민들에게 보내는 8개 항목으로 된 호소문이 채택되였다.

* 당시의 신문자료에는 《북조선 김일성대학창립 1주년을 당하여 북조선 전체 인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이 실렸는데 그중 첫째로부터 넷째까지가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관련자료들을 종합대학에 보내줄것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되였다.

《…우리는 첫돐을 맞이하는 금일 우선 전체 인민 여러분에게 파괴되고 분실되고 상실된 민족문화유산을 밝히고 적발하여 북조선 김일성대학을 중심으로 집중시킬것을 호소합니다.

첫째, 고적을 파괴와 도굴과 풍우에 의한 소마로부터 절대보장하며 그 고적의 유래를 밝히여 북조선 김일성대학에 보고합시다.

둘째, 향토의 향기며 자랑인 전설과 민요, 민담을 자연와전과 소멸로부터 보장할것이며 그것을 문자로 기록하여 김일성대학에 보고합시다.

셋째, 향토극(례하면 봉산탈춤 등)을 살리고 그에 대한 연구자료를 김일성대학에 제공합시다.

넷째, 고서, 고화, 고와, 고기 등 고대선인들의 미적생활의 반영인 골동품을 김일성대학에 기증하여 우리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예술을 내외에 선전합시다.…1947년 9월 17일》

《북조선 김일성대학창립 1주년기념 준비위원회》

전국 각지에서는 이 호소에 호응하여 기증사업이 활발히 벌어졌다.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당시)에 살던 한 주민은 주체36(1947)년 10월 14일 종합대학에 찾아와 고전민족예술로서 봉산탈춤에 쓰는 가면 일체도구를 대학에 기증하였으며 이밖에도 전국각지에서 조선력사관계서적과 각종 신문을 비롯한 귀중한 문화재들을 많이 보내여왔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인민들이 기증한 귀중한 유물자료들과 력사문학부의 교원, 학생들이 주체36(1947)년 6월부터 평양부근과 평안남도 강서군(당시) 일대에서 직접 발굴한 국보적가치가 있는 력사유물들을 대학창립 1돐을 기념하여 꾸린 전람회장에 진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김일성종합대학에 도서관을 꾸리고 우리 나라 력사와 문화, 우리 인민의 풍습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책들과 력사유물들, 민속자료들을 수집, 전시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그리하여 전국가적으로 대중적인 책수집운동이 벌어져 수많은 도서들이 들어왔다. 도서관이 개관된 다음에도 수집사업은 계속되여 평양시 창전리(당시)에서 살던 한 주민은 대학창립 1주년을 맞으며 종합대학 도서관에 중국력사관계책 700권, 중국에서 발간된 조선력사관계책과 조선문집 약 700권, 력사문헌과 학술저작 450권을 포함하여 근 2 000권의 책을 기증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대학에 력사박물관을 세워주시고 교육과 과학연구를 위한 실물자료로 리용하도록 해주시였다.

력사박물관은 초기에 교원학생들이 발굴한 자료들을 학부에 진렬하고 고고학박물관이라고 명명하였다.

* 당시의 신문에는 《인민의 힘으로 준공되는 우리의 김일성종합대학 오는 10월 10일 준공식》이라는 표제하에 대학에서 발굴한 락랑무덤의 유물들을 위주로 진렬한 고고학박물관이 있다는데 대하여 전하였다.

주체38(1949)년 9월에는 대학에서는 창립 3돐을 맞으며 고고학박물관을 더욱 발전시켜 대학 본교사 2층 가운데에 력사박물관으로 꾸렸다.

박물관에는 석기시대의 유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고고학, 민속학, 력사학 등에 관한 귀중한 자료 3 500여점이 진렬되였다.

* 당시의 신문에는 대학 력사박물관 개관에 대한 기사가 다음과 같이 실렸다.

김일성대학 력사박물관 설비완성

김일성대학 력사박물관의 개관준비가 완성되여 오는 10월 1일에 개관되게 되였다.

대학박물관시설은 일반의 견학과 참관을 주로 하고있는 보통박물관과 달리 이것은 연구와 교수자료로서 시설되였으며 각종 유물들을 연구상 편리하게 진렬하였다.

여기에 진렬된 유물들은 선사시대 유물과 락랑시대,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시대, 리조(조선봉건왕조)시대의 희귀한 조선물질문화유물을 비롯하여 리조(조선봉건왕조)시대의 공예품, 민속자료 또는 각종 모형사진, 도표들의 과학적사관에 립각하여 진렬되였다.

개관기념특별전람회를 10월 1일부터 1개월간에 걸쳐 개최하기로 되였는데 이 기간에는 이채있는 고려시대의 인쇄물 또는 락랑시대의 철기, 금속장식구 등도 특별진렬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조선력사편찬사업과 력사유적발굴을 진행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주체36(1947)년 2월 7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하신 결론에서 조선력사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조선력사를 새로 편찬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지금 력사전문가들과 과학자들이 대부분 종합대학에서 사업하고있는것만큼 조선력사편찬위원회는 대학에 자리를 잡고 사업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주체36(1947)년 9월 17일 중화군 남곳면 력사문학부 교원, 학생들이 락랑무덤을 발굴하는 현장을 찾으시고 앞으로 력사유적유물발굴과 보존사업을 진행하는데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민족사교육과 연구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대학에서는 매해 수십명의 학생들을 입학시켜 그들에게 주체적인 민족사교육을 주어 우수한 교육과학력량을 키워냈다. 바로 이러한 성과에 토대하여 전국적인 범위에서 민족사교육이 진행되였으며 전쟁의 그 어려운 시기에도 과학원을 창립하고 거기에 력사학, 고고학 및 민속학을 연구하는 연구소들을 설치할수 있게 되였다.

권위있는 학자들은 우리 나라의 력사에 대한 연구사업을 심화시켜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조선사강좌의 박시형교원은 조선봉건왕조의 물질적기초인 과전제의 사회경제적본질을 해명한 론문 《리조(조선봉건왕조)봉건사회의 과전제》, 김석형교원은 고려농민운동사에 대한 연구론문, 경제학부 김광진교원은 《농민전쟁으로서의 홍경래란》이라는 론문을 완성하였다.

이 과정에 새조선의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결정에 따라 주체39(1950)년 2월 력사학부 박시형교원이 《리조(조선봉건왕조)초기 토지제도의 성립과정》이라는 학위론문을 발표하여 력사학박사의 학위를 받았다.

해방후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김일성종합대학부터 창립하여주시고 참다운 민족사교육과 과학연구의 첫걸음을 떼여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령도가 있어 반만년의 민족사가 빛나고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이 넘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