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사나운 녀인》의 운명

 2021.11.24.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공화국이 창건됨으로써 과거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아온 우리 인민은 주권의 당당한 주인으로 되였으며 공화국정부의 보호하에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릴수 있게 되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8권 436페지)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조선녀성들은 온갖 천대와 멸시, 불행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타고난 운명으로, 《팔자탓》으로 여기면서 《팔자도망은 못한다》고 하면서 숙명으로 받아들이였다.

소설《한 녀성의 운명》과 조선예술영화《금녀에 대한 이야기》의 원형인 전필녀녀성도 해방전에는 자기가 당하는 온갖 천대와 멸시, 불행과 고통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자기를 《팔자사나운》 녀인으로만 생각해온 수많은 조선녀성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전필녀녀성은 해방전에 황해남도 배천군 금성리에서 태여났다. 곡창지대로 소문난 고장에서 태여났지만 그의 가정은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농사를 잘 지었어도 지주놈에게 다 빼앗기고 입에 풀칠도 제대로 할수 없었다. 그가 9살이 되던 해에는 지주놈에게서 장리로 가져다 먹은 콩 서말이 화근이 되여 보잘것없는 가산마저 차압당하고 정든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때부터 전필녀녀성은 쪽박을 차고 구걸도 해보고 남의 집 아이보개도 해보았으며 사리원방직공장과 영등포제사공장에 팔려다니며 감독놈의 채찍맛도 볼대로 보았다. 그리고 공장주의 더러운 요구를 거절한것이 화가 되여 반죽음이 되여 한강에 내버려지기도 하였다. 먹지 못한데다가 매맞은것이 도져 앓아누웠을 때 호구조사나왔던 왜놈순사놈은 그가 전염병에 걸렸다고 하면서 움막안에 가두어넣고 얼굴에 소독약을 뿌려 그의 한눈을 멀게 하였으며 눈먼 그를 보고 분을 참지 못하여 식칼을 들고 달려들었던 그의 남편은 놈들에게 억울한 생죽음을 당하였다.

그때마다 피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그의 어머니조차도 《네 팔자가 사나운걸 어쩌겠니》라는 말로 달랠수밖에 없었으며 전필녀녀성자신도 자기가 당하는 천대와 멸시, 불행과 고통을 어쩔수 없는 《팔자소관》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해방전에 전필녀녀성이 당한 온갖 천대와 멸시, 불행과 고통은 결코 타고난 팔자탓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제를 때려부시고 인민이 주인된 새 나라를 세워주신 후 전필녀녀성의 운명에서는 극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전필녀녀성은 지난날 《팔자사나운》 천덕꾸러기로 사회의 최하층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던 자기를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하여 축산업을 발전시킬데 대한 당정책관철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주체51(1962)년 1월 30일에 열린 해주지구의 농업협동조합관리일군회의에 참가하여 경험토론을 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제일 마지막에 토론하게 되여있던 그에게 첫 토론을 하게 해주시였고 회의휴식시간에는 그를 몸가까이 부르시여 그의 피눈물나는 지난날의 생활경위까지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구체적으로 물어주시였다. 눈에 생긴 자그마한 흠집을 놓치지 않으시고 가슴속에 맺힌 사연에 대하여 물어보시는 어버이수령님께 전필녀녀성은 착취사회에서 굳어진 《팔자가 사나와…》라는 팔자타령부터 시작하며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은 팔자탓이 아니라 나라가 없었던 탓이였다고 일깨워주시면서 오래간만에 만난 친딸에게서 불행한 이야기를 들으신듯 몹시도 가슴아파하시였다.

그후 전필녀녀성은 당의 축산정책관철을 위해 뛰고 또 뛰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신임과 배려에 의하여 큰 농장의 살림살이를 책임진 관리위원장으로, 나라의 정사를 의논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까지 성장하게 되였다.

그렇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제를 때려부시고 진정한 인민의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워주심으로써 지난날 나라를 빼앗긴 탓에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밑에서 갖은 천대와 멸시, 불행과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팔자탓으로만 여기며 살아온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나라의 당당한 주인, 자기 운명의 참다운 주인이 되여 보람찬 삶을 누리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