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길에 새기신 혁명적동지애의 숭고한 세계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박성진 ,   2020.7.29.

백두에서 개척된 조선혁명은 동지애로 닻을 올리고 동지애의 힘에 의거하여 전진하여왔다.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활동을 시작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평생 혁명동지들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하시였으며 동지적믿음과 사랑에 기초한 혁명대오의 사상의지적통일을 이룩하시여 혁명적동지애의 고귀한 전통을 마련하시였다.

가장 다심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지니시고 그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언제나 동지들을 먼저 생각하시며 동지를 위해서는 험난한 사선도 서슴없이 헤쳐나가시는 우리 수령님의 동지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헌신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그이의 고결한 천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서대문형무소를 찾으시였던 그날의 이야기는 숭고한 혁명적의리와 동지적사랑의 화신인 우리 수령님의 위인상을 감동깊이 전하여주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여름 나는 서울에 얼마동안 머무르며 남반부의 해방구사업을 지도한적이 있었다. 서울에 처음으로 가보는 나로서는 다녀보고싶은데가 한두군데가 아니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곳은 다 제쳐놓고 서대문형무소부터 찾아갔다.》 (김일성전집》 제100권 109페지)

주체39(1950)년 7월 16일 새벽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서울에 자리잡고있는 전선사령부를 찾으시였다.

이날 전선사령부사업에서 제기되고있던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고 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휴식하시기를 간청하는 전선사령관 김책동지에게 서대문형무소에 나가보자고 하시였다.

서대문형무소에 나가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였던 김책동지는 크나큰 격정에 휩싸인채 마음을 진정하고 위대한 수령님께 파괴된 서대문형무소에 지금은 수인들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래도 가보아야 하겠다고 하시며 산에서 싸울 때 권영벽, 리제순,리동걸,지태환동무들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교형리들에게 희생되였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나라가 해방된 다음 그들의 묘지라도 찾아가볼 생각을 하였다고, 일제놈들이 그들의 묘지를 만들어놓을리는 없지만 우리 동무들의 피와 숨결이 어려있는 형무소의 지붕과 담벽이라도 보아야 마음이 풀릴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회고하신바와 같이 서대문형무소를 꼭 찾아보려고 결심하신것은 하루이틀전에 생각하신 일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벌써 나라가 해방되면 서울에 가서 감옥에서 희생된 전우들의 묘지라도 찾아보려고 생각하고계시였지만 조국이 분렬된것으로 하여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시다가 결국 조국이 해방된지 5년만에 비로소 성취하게 되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잊지 못해하시며 한명한명 이름을 부르신 그들은 모두가 김책동지를 비롯한 투사들이 항일의 피어린 전장에서 사선의 고비를 함께 헤쳐온 잊을수 없는 전우들이였다. 하지만 투사들은 해방된 서울에 나온지 며칠이 되였지만 전우들이 생을 마친 서대문형무소에 찾아가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투사들은 생각하면 할수록 서울에 도착하신 그날로 사랑하는 전우들의 넋이 깃든 서대문형무소부터 찾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이날 13시 30분경 전선사령부를 떠나시여 서대문형무소에 도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볼품없이 파괴된 형무소대문과 우중충하고 거무칙칙한 형무소의 담벽들,한산하기 그지없는 형무소구내를 한참동안 바라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리쳐 부르면 금시라도 달려나올것만 같은 그리운 얼굴들을 찾아보시려는듯,묘지도 못남기고 떠나간 사랑하는 전우들의 넋이라도 불러내시려는듯 페허가 되다싶이 한 형무소의 이곳저곳을 더듬고 또 더듬으시며 형무소구내를 거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형무소구내를 돌아보시면서 근엄하신 음성으로 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반대하여 싸운 수많은 조선민족의 우수한 아들딸들이 희생되였다고 하시면서 그들은 조국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참된 혁명가들이였고 애국자들이였다고,그들을 잃었을 때 가슴아픔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서대문형무소에서 희생된 권영벽동지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그가 희생되기 며칠전에 동지들에게 《나는 이 세상에 아들 하나를 남기고 간다. 나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아들이 자라서 아버지가 하던 일을 계속해달라는것이다.》라고 부탁하였는데 그가 남긴 이 말은 자신에게 한 부탁이였다고,그래서 나는 나라가 해방된 다음 그의 아들을 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1948년에야 청진거리에서 거름달구지를 끌고다니는 그의 아들을 찾아 만경대혁명학원으로 보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희생된 동지들을 생각하면 밤에도 잠이 오지 않고 눈물이 난다고, 혁명에 충실하고 견결하고 로숙한 동무들을 잃었다고, 우리한테서 일제교형리들은 귀중한 동지들을 앗아갔다고 비분에 잠겨 말씀하시였다.

《그들의 모습은 눈에 선하고 목소리는 귀에 쟁쟁한데 여기에 와도 다시 볼수는 없습니다.》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사랑하는 전우들의 넋이라도 조용히 불러내시려는듯 우중충한 형무소의 여기저기를 더듬어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눈굽에는 어느덧 물기가 어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수건을 꺼내시여 조용히 눈굽을 닦으시였다.

가슴저린 추억을 더듬으시며 끝내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전선사령관 김책동지를 비롯한 전선사령부의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희생된 전우들의 몫까지 합쳐 기어이 원쑤들을 복수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백배로 복수하자고 하시면서 먼저간 동지들의 념원을 반드시 실현하자고 뜨겁게 호소하시였다.

사실 위대한 수령님의 삼촌이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께서 일제교형리들에게 체포되여 옥사하신 마포형무소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서대문형무소부터 찾으시였다.

해방이 되여 처음으로 찾으신 서울에서 만나고싶으신 사람도, 가고싶으신 곳도 많으셨지만 크고 작은 모든것을 뒤로 미루시고 희생된 동지들의 넋이 깃든 서대문형무소부터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지적의리의 세계는 혈연의 관계를 초월하는 숭고한 혁명적의리, 뜨거운 인정과 고결한 사랑의 세계였다.

참으로 혁명적동지애의 위대한 력사와 고귀한 전통을 마련하시여 주체혁명위업계승의 귀중한 유산으로 물려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동지적의리의 세계는 우리 혁명의 력사와 더불어 앞으로도 영원히 위대한 수령님들을 높이 모시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승리만을 떨쳐갈 우리 인민의 불굴의 정신력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