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권영민
2025.4.2.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이민위천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시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오늘 조선의 수많은 농촌마을들에서 들려오는 새집들이소식을 들을 때면 농민들에게 더 좋은 살림집을 마련해주시려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영상이 숭엄히 안겨온다.
1973년 11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황초령너머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함주군 동봉협동농장(당시) 2층살림집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새로 짓는 2층살림집의 형태와 구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붕을 가리키시며 일군들에게 저렇게 평지붕을 해가지고는 비가 샌다고 하시면서 평지붕을 고쳐 기와를 이으면 어떻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사실 그때 새로 짓는 살림집들에 왜서인지 비가 새여 일군들이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군의 책임일군은 많은 량의 자재를 더 들여야 하고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정하신 음성으로 그러면 모두 함께 돌아보면서 무엇을 고치겠는가 연구해보자고 하시며 천천히 집주위를 돌아보시였다.
지붕과 벽체사이를 깐깐히 살펴보시며 걸음을 옮기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한곳을 가리키시더니 저걸 좀 보라고, 지붕꼭대기가 아니라 바로 저 모서리처리를 잘못해서 련결짬으로 비가 샐것이라고 지적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설계를 다시 해야겠다고 하시며 2층 좌우측공간은 송림식으로 다 나오게 하고 뒤면공간도 앞으로 나오게 하되 장막판을 우에 덮은것은 그대로 두어도 좋다고, 농촌문화주택은 송림식주택으로 짓는것이 좋을것이라고 깨우쳐주시였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 많이 건설되던 송림식주택은 황해북도 송림에서 처음으로 건설한 살림집형식으로서 층별살림방으로 된 2층집구조로 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지붕은 모서리련결짬을 해결하기가 힘들므로 송림식으로 기와를 씌우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몸소 무릎을 굽히시고 땅우에 나무꼬챙이로 그 지붕형태를 그려주시며 자재를 적게 들이면서도 쉽게 고칠수 있는 묘안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물안으로 걸음을 옮기시면서 집에 비가 새면 농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비가 새면 2층문화주택을 지으나마나 하니 그것을 결정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강조하시고나서 설계를 고칠바 하고는 비가 새는 곳을 퇴치할것만 타산하지 말고 방의 구조도 농민들의 생활습성에 맞게 고쳐 더 잘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농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정녕 이 말씀에는 농민들의 생활에 사소한 부족점도 있을세라 걱정하시며 농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려는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인민관이 집대성되여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 인민을 위한 헌신의 자욱을 새기신 조선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