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특산물

 2021.9.20.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7세기말부터 10세기초까지 200여년간 존재하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가 크게 발전하여 <해동성국>으로 이름을 떨치였습니다.》 (김정일전집》제2권 181페지)

고구려유민들의 줄기찬 투쟁으로 698년에 성립되여 926년까지 근 230년간 존재한 발해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면에서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특히 발해에는 넓은 령역안에 산줄기, 강하천, 해안, 산지, 평야와 같은 각이한 지형조건과 그에 따르는 서로 다른 기후풍토가 존재한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생산활동도 다양하게 진행되였다.

발해에서는 매 지방에 적합한 경제부문들이 개척되고 생산의 장성과 더불어 여러 물품들은 특산으로 되여 주변 나라들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중국의 당나라시기 력사를 전하는 《신당서》 발해전에서는 《풍속에 귀한것이 태백산의 토끼, 남해의 곤포, 책성의 메주, 부여의 사슴, 막힐부의 돼지, 솔빈부의 말, 현주의 베, 옥주의 무명, 룡주의 명주, 위성의 철, 로성의 벼, 미타호의 붕어이며 과일은 환도의 오얏과 락유의 배가 있다.》라고 하였으며 발해의 력사와 지리에 대하여 서술한 《발해고》에서는 부주의 은을 발해의 특산물로 서술하였다.

특산물이란 대체로 일정한 나라 또는 어느 한 고장에서만 특수하게 생산되거나 그 고장의 물품가운데서 그곳을 대표할만큼 유명한것을 말한다. 앞의 기록에서 귀한것이란 바로 당시 발해의 여러 지역에서 특별히 생산되여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진 특산물들을 말한다.

이러한 발해의 특산물들에는 농업과 수공업, 수산업과 수렵활동 등 당시 발해경제의 발전면모가 다 담겨져있다.

우선 특산물의 하나인 로성의 벼와 책성의 메주는 발해의 알곡작물재배기술과 발전에 대하여 보여준다.

벼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주요알곡작물로서 발해에서도 중요한 주식물재료의 하나인 벼농사를 적극 장려하였다.

그중에서 지금의 돈화, 화룡, 연길을 중심으로 한 길림성일대에 속한 지역이였던 로성지방의 벼는국내에서뿐아니라 이웃나라에서도 이름난 특산물도 알려졌다.

이와 함께 발해에서는 주요부식물재료인 콩도 널리 재배하여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식생활풍습과 민족적특성을 계승해나갔다.

콩은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작물의 하나이며 그것으로 메주를 만들어 생산한 장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민족음식이다.

발해시기에도 콩으로 메주를 담그었는데 그중에서도 책성지방의 메주는 그 맛이 뛰여나 특산으로 널리 전해졌다.

책성지방은 오늘의 함경북도와 로씨야 원동련방구 연해변강의 남쪽, 중국의 길림성 훈춘지방을 포괄하고있다.

또한 발해에서는 축산업도 발전시켜나갔는데 이것은 특산물들인 막힐부의 돼지와 솔빈부의 말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막힐부는 막주와 고(힐)주를 포괄하고있는 옛날 부여국의 어느한 지역으로서 발해는 예로부터 돼지를 비롯한 여러가지 집짐승들을 많이 기른 이 지역의 전통을 적극 살려 여기에서 축산업을 발전시키고 돼지고기생산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하여 군사를 중시한 발해는 말기르기도 여러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하였으며 그중에서 오늘의 수분하류역에 위치하고있던 솔빈부의 말은 명마로 널리 알려져 다른 나라에도 수출되였다.

또한 특산물들인 환도의 추리, 락유의 배는 발해의 과일재배업의 일단을 보여주고있다.

환도는 압록강중류류역에 위치하고있었으며 락유는 중국의 흑룡강성 녕안현 녕고탑으로 추정하고있다.

고구려력사와 더불어 잘 알려져있는 환도는 매우 오랜 추리재배력사를 가지고있으며 녕안현의 배 역시 예로부터 그 맛이 아주 좋은것으로 이름이 났다.

발해는 고구려의 전통적인 과일재배를 적극 장려하여 추리와 배생산을 중시하였으며 특산물로 생산하여 다른 나라까지 널리 알려지게 하였다.

이밖에도 발해의 특산물들인 현주의 베와 옥주의 무명, 룡주의 명주는 발해의 직조수공업의 발전면모를 보여주고있다.

발해 15부의 하나인 현덕부의 현주는 발해의 이름있는 베천생산지였으며 여기서 생산된 질좋은 베천은 당시의 발해직조수공업의 발전을 알수 있게 한다.

옥주는 남해부에 속한 한개 주였다.(《신당서》 권 219 렬전 144 발해) 여기서 생산된 솜은 지금의 면솜이 아니라 그 어떤 섬유원료를 가지고 솜을 대용할수 있는것으로 볼수 있다. 왜냐하면 발해때에 아직 목화가 재배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있으며 더우기 오늘도 남해부지역이였던 함경남도지방은 목화생산의 기후풍토적조건을 충분히 가지고있지 못하기때문에 그렇게 말할수 있다.

룡천부관하 룡주는 발해국의 수도가 자리잡고있던 상경과 가까운 곳이므로 발해의 지배계급이 집중되여 살고있었던 곳이다. 그런것만큼 룡주는 비단에 대한 수요도 다른 지방에 비하여 훨씬 높았을것이며 그 요구는 비단생산발전을 자극하였을것이다.

앞에서 본 직조수공업제품들은 질좋은 섬유원료에 의한것으로서 발해의 공예작물재배의 발전면모도 잘 알수 있게 한다.

또한 발해의 특산물들인 위성의 철과 부주의 은은 발해의 금속수공업의 발전에 대하여 보여주고있다.

발해에는 이름난 철산지들이 많았는데 현덕부관하의 철주에 소속된 현들가운데서 위성은 가장 유명한 지방으로 알려져있었다.

위성의 위치는 대체로 오늘의 무산 또는 그와 가까운 지역으로 추측된다.

이밖에도 발해에는 철리부의 광주를 비롯한 주요철산지들이 많았으며 여기에서 생산된 철광석들은 고구려의 제철수공업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철제품들의 원료로서 그 질이 높아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져있었다.

력사기록에는 부주의 은도 발해의 특산물로 소개되였다.

부주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하여 말하기는 어렵지만 부주의 은이 특산물로 기록되여있는것은 발해의 여러 곳에서 생산되는 은가운데서 부주의것이 유명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또한 발해의 특산물들은 발해의 수산업과 수렵활동에 대하여 잘 보여주고있다.

남해의 곤포와 미타호의 붕어는 수산업에 대하여 보여주는 특산물들이였다.

남해는 바다이름이 아니라 지명으로서 남해부관내에서 오늘의 단천, 리원지방으로 짐작된다.

미타호의 위치에 대하여 여러 견해가 있는데《해동역사》와 《발해국지장편》에서는 오늘의 중국 흑룡강성 밀산현의 동남쪽에 있는 홍개호라고 하였으며 《녕안현지》에서는 흑룡강성 녕안현경내에 있는 경박호라고 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미타호를 길림성 전곽이라사 몽골자치현에 있는 사간호로 보는 견해도 제기되고있다.

《남해의 곤포》나 《미타호의 붕어》는 당시 유명했던 발해의 수산업발전을 보여주는 특산물로서 다른 나라 력사기록에까지 전해지게 되였다.

《태백산의 토끼》와 《부여의 사슴》은 발해의 수렵활동에 대하여 보여주고있다.

태백산은 오늘의 백두산에 대한 당시의 명칭으로서 태백산의 토끼를 특산물중에서도 선차로 꼽는것은 발해시기에도 우리 민족의 백두산숭배정신이 계승되여 있었음을 알수 있게 한다.

당시 태백산의 토끼는 귀한 산짐승의 하나로서 가죽은 모자와 털옷을 만드는데 썼고 꼬리털은 붓을 만드는데 썼으며 고기는 식용으로 하였을것이다. 이 토끼털이 질이 좋았기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사슴사냥으로 이름난 부여부는 오늘의 중국 길림성 회덕현일대에 자리잡고있었다.

벌써 부여때 이곳에서는 짐승사냥이 널리 진행되여 부여의 귀족들은 산짐승가죽으로 가죽덧저고리와 같은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발해에서도 그 전통을 이어 사슴을 사냥하여 자기들의 생활에 유리하게 리용하였다.

사냥한 사슴의 고기는 식용으로, 뿔은 약재로 리용하였으며 가죽은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큰 사슴은 길들여 썰매를 끄는데도 썼을수 있다.

발해인민들은 자연을 개조하고 생산을 늘이기 위한 창조적인 활동과정에 경제의 여러부분을 다양하게 발전시켰으며 그 과정에 특산물들은 다른 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지고 전해지게 되였다.

이러한 특산물들은 고대부터 우리 민족이 지역적특성에 맞게 이미 창조하고 계승하여온것으로서 발해는 이것을 더욱더 발전시켜 경제장성에 이바지하였다.

력사기록에 전해오는 발해의 특산물들은 우리 인민이 예로부터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생산물들의 다양성과 독자성, 계승성을 잘 알게 하여줄뿐아니라 당시 발해의 우수한 경제활동에 대하여서도 알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