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과학자들이 받아안은 사랑과 배려
1. 수령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리승기박사

 2021.4.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조선의 과학자들모두를 따뜻한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여 혁명적인 지식인으로 키워주시고 영생하는 삶을 안겨주신 위대한 스승이시며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조선의 과학자들이 받아안은 사랑과 배려에 대한 이야기들가운데서 리승기선생에게 돌려주신 사랑과 배려는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리며 끝없이 전해지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과학자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며 그들의 사업과 생활에서 걸리고있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고계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8권 275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며 굴욕과 멸시만을 당해오던 리승기선생이 우리 인민의 사랑을 받는 과학자로 성장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시며 크나큰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준엄했던 조국해방전쟁시기 남조선에서 리승기선생을 찾아 데려오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신데 이어 공화국의 품에 안긴 그와 가족들의 생활과 건강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고 필요한 온갖 조치들을 다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10월 긴급한 전쟁상황으로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을 때 그가 가족들과 함께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도록 필요한 운수기재까지 보장해주시며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뿐만아니라 비날론속도가 창조되던 시기인 주체49(1960)년 9월에는 리승기선생이 병으로 입원하였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시고 몸소 그에게 사랑의 선물과 친필편지도 보내주시며 고무해주시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59(1970)년 11월초에는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를 지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그의 눈에 이상증상이 생긴데 대하여 대번에 알아보시고 눈치료를 위한 은정어린 조치들도 취해주시였다. 사실 그에 대해서는 담당의사도, 가까이에 있는 집사람도 미처 알지 못하고있던 사실이였다. 리승기선생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없어가지고서는 생각도 할수 없는 전설같은 이야기라고 해야 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처럼 다심하고 뜨거운 사랑속에서 리승기선생은 91살의 고령의 나이에 이를 때까지도 왕성한 정열을 잃지 않고 자기의 과학적재능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승기선생의 생활과 건강은 물론 그가 과학연구사업에서 성과를 이룩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리승기선생은 30대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폴리비닐알콜계합성섬유인 비날론을 발명하는 특출한 연구성과를 내놓았지만 나라잃은 식민지인테리에 불과했던 그의 처지와 비날론의 운명은 참으로 비참하였다.

리승기선생의 운명을 구원해주시고 그의 발명품인 비날론이 빛을 보게 하여주신분은 바로 우리의 수령님이시였다.

주체41(1952)년 4월 27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과학자대회에 참가한 리승기선생은 자립적인 화학공업을 발전시킬데 대하여 하신 수령님의 연설을 새겨들으면서 옳바른 연구방향을 확정하고 비날론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승기선생이 가렬처절한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비날론연구사업을 마음껏 해나갈수 있는 조건을 보장해주시기 위해 실험기구와 시약을 마련하여 보내주도록 하시였으며 그가 마음놓고 연구사업을 할수 있도록 갱도속에 실험실도 꾸려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보살피심이 있었기에 그는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비날론연구를 계속 할수 있었으며 우리 나라에 풍부한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하는 주체적인 비날론공업창설을 위한 과학적토대를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할수 있었다.

첫 비날론공장이 건설되여 조업하던 날 몸소 조업식장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은 리선생의 소원이 풀리는 날이라고 정담아 뜨겁게 교시하시면서 그의 과학연구성과를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정녕 과학자 한사람한사람을 금싸래기처럼 귀중히 여기시며 뜨겁게 품어주고 키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품이 있었기에 리승기선생은 조선의 과학자, 조선로동당의 지식인으로서 가장 높은 존엄과 행복한 삶을 누릴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품속에서 리승기선생은 생애의 마지막까지 국가과학원 함흥분원 원장으로, 주체46(1957)년 8월 제2기부터 제9기에 이르기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사업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데서 공로를 세운 그에게 원사(1952년), 교수(1961년), 박사(1959년)의 명예칭호와 로력영웅(1961년), 김일성상(1980년), 인민상(1958년), 인민과학자(1986년)칭호, 국기훈장 제1급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수여해주시는 하늘같은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지혜와 재능을 다 바쳐 일해온 리승기선생을 조선지식인대회에 불러주시였으며 90번째의 생일을 맞는 그에게 생일상까지 보내주시였다. 그가 우리곁을 떠났을 때에는 그는 우리 나라에서 비날론을 연구하고 공업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과학자라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승기박사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다고 하시면서 그의 령구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리승기선생이 받아안은 사랑과 배려는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우리 조선의 과학자, 기술자들을 얼마나 아끼고 귀중히 여기시였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을 끝없이 아껴주고 키워주시는 위대한 당의 품이 있어 우리 조선의 과학자들은 이 세상 가장 긍지높고 행복한 삶을 누리며 자기의 과학적재능을 마음껏 꽃피우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