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국리의 건설주가 되신 국가수반

 2022.6.2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농민들의 살림집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왔으며 국가부담으로 농촌에 많은 현대적문화주택을 지어주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67권 485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한평생 우리 농민들을 보다 문화적인 살림집에서 행복하게 잘살게 하기 위하여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우리 농민들에게 보다 문화적이며 현대적인 살림집을 마련해주시려고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의 로고는 몸소 오국리의 건설주가 되신 이야기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

주체63(1974)년 5월 24일 저녁무렵 모내기가 한창이던 안악군 오국리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푸르러가는 논벌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시다가 농장의 일군에게 농민들의 살림집을 왜 짓지 않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때 오국리농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미 주체51(1962)년 정월에 이곳을 찾으시여 주신 과업에 따라 낡은 사회의 유물인 초가집을 헐어버리고 양지바른 산기슭에 아담하게 지은 문화주택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있었으며 농사를 잘 지어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할 일념을 안고 농사일에만 집중하였지 보다 문화적이고 현대적인 살림집건설에 대해서는 별로 낯을 돌리지 않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그전에 우리가 여기에 왔을 때에는 살림집을 좀 짓느라고 하였는데 이번에 여기 와보니 그런것도 없다고 하시면서 아마 이곳 일군들은 이제는 혁명이 다된줄 아는것 같다고 심려어린 교시를 하시였다.

자책에 잠겨있는 농장의 일군에게 자동차만 주면 래일부터라도 집을 지을수 있는가고 다정하게 물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래일 신천에서 농촌살림집건설문제를 더 토론해보자고 하시면서 협의회때 좋은 안을 내놓으라고 이르시였다.

오국리를 떠나시여 현지지도를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달리는 차안에서 도당의 한 책임일군과 오국리건설문제를 의논하시였고 은천군 신창리에 이르시여서도 저녁노을이 물든 오국리쪽을 바라보시며 오국리를 환하게 꾸려주자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다음날 신천군에서 농촌건설부문 일군협의회를 소집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국리의 지형도를 짚어가시며 마을의 위치와 살림집의 모양, 내부구조와 난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으며 건설자재와 건설기계, 운수기재 등 무엇이나 다 주겠으니 1 000세대를 목표하고 1년동안에 오국리를 현대적이며 문화적인 농촌으로 건설해보자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쌀을 생산하느라 수고하는 우리 농민들을 건설에 돌려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시며 건설력량도 친히 무어주시고 철도와 재령강을 리용하여 건설자재를 실어나를 대책까지 세워주시였다. 건설과 관련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고 대책을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흡한 점이 없는가를 다시 확인해보시다가 책상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리시며 오국리건설을 누가 책임지고 하겠는가, 그래도 누가 건설을 책임져야 하겠는데 라고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자애에 넘치는 눈길로 일군들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국리의 건설주는 자신께서 되시겠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친히 오국리의 건설주가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협의회를 마치신 다음에도 도당의 한 책임일군을 부르시여 안악군 오국리를 사회주의리상촌의 본보기로 꾸리고 군당책임일군들이 와보고 배우게 하라고 가르쳐주시였으며 하나의 집을 지어도 우리 농민들의 생활감정에 맞게 조선식으로 지어야 하며 산등성이에 보기 환하게 지어주되 집집마다 수도를 꼭 놓아주라고 간곡하게 교시하시였다.

그후에는 오국리건설사판을 친히 보아주시면서 살림집과 함께 구락부와 체육관, 탈곡장과 창고, 학교와 병원도 건설하며 그 건설순차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으며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30여차례의 먼거리전화를 통하여 건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고 살림집건설이 한창이던 주체63(1974)년 9월 5일 또다시 현지에 나오시여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령도와 세심한 보살피심에 무한히 고무된 건설자들은 힘찬 투쟁을 벌려 총건평 8만m2의 드넓은 부지에 1 300세대의 살림집을 불과 1년동안에 훌륭하게 건설하였다.

주체64(1975)년 6월 2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에서 쌓이고쌓인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완공된 오국리를 찾으시였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전망대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푸르청청한 솔밭과 백과주렁진 과일동산을 중심으로 줄지어 늘어선 살림집들과 상업망들, 편의봉사망들, 탁아소와 유치원, 학교와 병원 등 마을전경을 감개무량하신듯 한동안 굽어보시다가 만족하신 어조로 오국리가 정말 멋있게 건설되였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이번에 유럽과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가보았지만 이만한 농촌부락은 보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여기에 와보고 제일 만족하게 생각하는것은 농촌살림집들에 수도가 다 들어간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등성이에 2~4층짜리 살림집을 지어놓았기때문에 여름철에는 농장원들이 웃층에 올라가서 창문을 열어놓고 곡식이 무르익어가는 벌판을 내다보면서 휴식할수 있게 되였다고, 오국리사람들은 말그대로 신선놀음을 할수 있게 되였다고 기쁨에 넘쳐 교시하시였다.

이처럼 안악군 오국리는 몸소 여러 차례에 걸쳐 현지지도하시면서 건설을 발기하시고 그 방향과 방도를 일일이 가르쳐주시였으며 친히 건설주가 되시여 설계로부터 시공, 관리운영에 이르기까지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의 로고에 의하여 사회주의리상촌으로 훌륭하게 건설되였다.

건설주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국가로부터 기본건설계획을 받아 시공주기관, 기업소에 시공을 위탁하고 완공된 건설물을 넘겨받아 그 관리운영자로 될 기관, 기업소를 말한다. 따라서 건설주는 마땅히 오국리의 기관, 기업소가 되여야 한다.

하지만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돌보셔야 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설주사업을 국가건설기관과 기업소, 오국리에 맡기지 않으시고 평범한 농촌마을의 건설주사업을 직접 맡아안으시였다.

인류가 지구상에 첫 보금자리를 꾸리기 시작한 때로부터 오늘까지 수천년의 건설력사를 기록하고있지만 근로하는 농민들에게 보다 현대적이고 문화적인 살림집을 안겨주기 위하여 몸소 건설주가 되여 로고를 바친 령도자는 동서고금 그 어디에도 찾아볼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