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를 애국적지조를 지킨 인물로 내세워주시여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윤신영 ,   2019.12.6.

우리 나라 력사에 이름을 남긴 력사적인물들을 정확히 평가하는것은 민족사를 옳바로 정립하고 우리 인민들과 후손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예로부터 전해오는 사료들에는 력사적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사실에 맞지 않게 외곡되여있는것이 적지 않다.

고려의 대관료이며 유능한 군사지휘관이였던 강조가 바로 그러한 인물들중의 하나이다.

천재적인 예지와 비상한 과학적통찰력으로 조선력사상의 제반 문제들에 대하여 환히 꿰뚫고계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나날에 반거란전쟁시기 고려의 행영도통사였던 강조는 마지막까지 굴함없이 애국적지조를 지켜 싸운 애국적인물이라는데 대하여 과학적으로 밝혀주시였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강조는 전투지휘를 잘하지 못하여 고려인민앞에 큰 죄를 짓고 생포까지 된 조건에서 투항하면 거란의 높은 벼슬자리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 굴함없이 애국적지조를 지켜싸웠습니다.》 (김정일전집》 제2권 530페지)

강조는 10세기말-11세기초의 대관료이며 유능한 군사지휘관이였다.

그는 서북면도순검사로 임명되여 서경에 내려가 변방을 지키고있던중 외척 김치양일당이 왕권탈취음모를 꾸미고있는데 대하여 불안을 느낀 목종으로부터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왕궁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따라 그는 1009년 2월 5 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수도 개경에 올라와 왕궁을 점령하고 김치양부자를 포함한 수십명을 귀양보내거나 살해하였으며 이어 목종왕을 퇴위시키고 대량원군 순을 왕(현종)으로 앉힌 다음 나라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1010년 11월 거란이 40만의 병력으로 쳐들어오자 강조는 행영도통사로 되여 30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전선으로 달려나가 통주(동림군)에서 침략군의 주력과 대전하였다. 처음 몇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한데 자만도취한 그는 바둑만 두면서 군사지휘를 소홀히 하고있다가 적기마대의 불의습격을 받아 생포되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거란왕의 항복강요에 굴하지 않고 최후를 마치면서까지 지조를 지켜 싸웠다.

이러한 강조를 봉건사가들은 왕을 갈아치운 반역자라고 하면서 1451년에 편찬한 《고려사》에서 반역렬전에 넣어 기록하였으며 1822년에 남공철이 편찬한 《고려명신전》에서는 3백수십명의 고려시기 대표적인 인물들을 기록하면서도 강조를 취급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강조는 유능한 군사지휘관이며 죽으면서까지 적에게 굴복하지 않은 애국적지조가 강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초까지 근 천년간 반역적인 인물로 평가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0(1961)년 4월 25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하신 담화 《력사가 남긴 몇가지 교훈》에서 먼저 고조선, 고구려 말기의 력사가 남긴 교훈에 대하여 가르쳐주시고 계속하여 학생들에게 사람은 어떤 환경속에서도 애국적지조를 지켜야 하며 민족을 배반하는것과 같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시면서 강조의 활동내용을 실례들어 설명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려가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제2차 반거란전쟁을 할 때에 행영도통사 강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행영도통사는 지금의 전선사령관격이라고, 행영도통사는 평안북도 동림의 통주성에 자리잡고있었는데 방어군은 성밖에 미리 진을 치고있다가 흥화진을 거쳐 통주성으로 밀려드는 적들에게 된매를 안기였다고, 강조는 첫 승리에 자만도취하여 바둑만 두면서 군사지휘를 소홀히 하고있다가 적기마대의 불의습격을 받아 생포되고말았다고, 갑자기 사령부를 잃게 된 고려의 방어진에는 혼란이 일어나고 많은 희생자가 생기게 되였으며 전쟁전반에 심각한 후과가 빚어졌다고, 이것은 첫 승리에 자만도취하여 적을 경시하면 싸움에서 실패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언제나 적을 과대평가하여도 안되지만 과소평가하여도 안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강조는 수십만 대군을 거느린 행영도통사로서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조국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강조가 생포되여 끌려갔을 때 거란왕은 그를 회유하여 자기의 신하로 만들려고 결박하였던것을 풀어주면서 거란의 신하가 될 생각이 없는가고 물었으나 강조는 머리를 높이 쳐들고 당당하게 나는 고려사람이다, 어떻게 변절하여 네놈의 신하가 되겠는가고 대답하였다고, 달콤한 말로 얼리기도 하고 악착한 고문을 들이대기도 하였지만 강조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한 거란왕은 강조와 함께 생포한 행영도통부사에게도 신하가 될것을 강요하였는데 이자는 두눈으로 이미 새 임금을 우러러보게 되였는데 어떻게 옛 산천을 생각하겠는가고 지껄였다고, 이때 강조는 너무도 격분하여 네놈도 고려사람인데 어떻게 그따위 말을 하느냐고 꾸짖으며 변절자를 발로 찼다고, 강조를 도저히 굴복시킬수 없다는것을 알게 된 적들은 그를 끝내 학살하였다고 이야기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강조는 고려인민앞에 큰 죄를 짓고 생포까지 된 조건에서 투항하면 거란의 높은 벼슬자리를 얻을수 있었으나 그는 마지막까지 굴함없이 애국적지조를 지켜 싸웠다고 하시면서 사람은 살아가는 과정에 과오를 범할수도 있다, 그러나 과오가 두려워 조국을 배반하는 길에 들어서면 돌이킬수 없는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사람은 언제나 나라와 민족앞에 결백하여야 하며 어떤 환경속에서도 조국을 배반하는 더러운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력사에는 충신과 간신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교훈적인 사실도 적지 않다고 하시면서 우리들은 옛날의 력사적사실을 아는데 그치지 말고 언제나 그것을 높은 정치적안목을 가지고 분석적으로 대하여야 하며 그래야 우리의 력사지식이 혁명실천에 이바지하는 산지식으로 될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난날 나라의 반역자로 그릇되게 평가되여온 강조를 생의 마지막까지 굴함없이 조국을 배반하지 않은 애국적인물로 재평가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강조에 대하여 새롭게 재평가하여주신것은 력사인물평가에서 주체적립장과 당성, 로동계급성의 원칙, 력사주의적원칙을 철저히 구현하신 빛나는 귀감의 하나로 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강조를 애국적인물로 새롭게 재평가해주심으로써 사람들의 기억속에, 인류력사의 갈피속에 사라져가던 그의 이름은 더욱 유명해지고 후세에 길이 전해지게 되였다.